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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전국민 재난지원금에 드리워진 '노예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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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범 경상대 경제학과 교수

김홍범 경상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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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민 재난지원금을 올봄에도 지급하자는 여권 실세들의 목소리가 새해 벽두부터 보름간 쏟아졌다. 그 덕분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추후 진정되는 시점에서 보편지급하는 쪽으로 여권 내 입장이 쉬 정리된 듯하다. K자 양극화가 심화된 요즘 피해계층 선별지급에 비해 전국민 보편지급은 극히 불공평하고 비효율적인데도 말이다.


실은 이번 재난지원금 보편지급론이 기본소득 시대를 여는 서막이길 은근히 기대하는 여야 정치인이 한둘이 아니다. 오랜 고실업·저성장에 코로나19까지 겹쳤으니, 보편지급이 또 실시되면 나라 전체가 현금복지에 눈멀 판이다. 일 하든 안 하든 온 국민이 기본소득을 상시 지원받는 세상을 이참에 상상해보자. 국가가 국민생계를 직접 책임지는 세상. 이게 지속 가능할까, 멋진 유토피아일까.

첫째, 기본소득의 세상은 지속 불가능하다. 우선 놀고먹는 사람들이 점점 늘 것이다. 내가 일해 번 돈의 큰 부분이 일하지 않는 너를 위해 세금으로 나가는데 굳이 일할 의욕이 날까. 일 그만둔 너는 꾼 돈으로 부동산·주식·비트코인 퍼담아 운 좋게 벼락부자가 됐는데, 성실히 일하고 저축해서 고작 벼락거지로 남은 내가 널 따라 하면 안 될 이유가 있을까.


한편 국민생계 보장에는 거액 재원이 계속 필요하다. 민간이 생산활동을 속속 접는 와중에 세금을 마냥 올릴 수 있는 정부는 지구상에 없다. 그렇다고 국가부도 위험을 무릅쓰고 국가채무를 무작정 늘려갈 수도 없다. 국가가 돈을 무한정 찍어내면 된다는 현대통화이론(MMT)의 해괴한 논리가 맞다면 모를까, 공짜점심은 없다는 세상의 이치를 정부가 끝까지 거스를 순 없는 일이다.


둘째, 기본소득의 세상은 유토피아이긴커녕 끔찍한 디스토피아다. 정부 입맛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국가의 이름으로 규율하는 데에 기본소득은 더없이 좋은 미끼다. 정부가 생계보장을 내세워 국민을 통제하는 건 순식간이다. 기본소득과 전체주의가 한몸인 이유다.

일찍이 플라톤은 민주주의의 역기능을 경고했다. 평등지상주의에 사로잡혀 옳고 그름마저 분간하지 않게 된 민주시민들은 "그날그날 순간의 쾌락에 탐닉하며 산다"는 것이다. 글로벌 위기와 코로나19로 기존 경제질서 및 불평등에 대한 대중의 분노와 절망이 한껏 축적된 요즘이 꼭 그렇다. 포퓰리즘적 정치인들이 이런 기회를 놓칠 리 없다. 이들은 대중의 근시안적 욕구를 현금으로 펑펑 채워 현금중독 사회로 몰아가기 바쁘다. 표만 되면 사회갈등도 증폭시키기 일쑤다. 오로지 정권의 획득과 유지를 위해서다. 그러는 동안 세계 여러 나라에서 법률의 정치도구화(rule by law)로 법치(rule of law)가 무너져내린다. 국민의 국가 의존이 심화된 탓이다. 이런 마당에 기본소득 도입은 생각만 해도 섬뜩하다.


대공황의 여파 속에 1940년대 전반에도 세상의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크게 훼손됐다. 훗날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프리드리히 하이에크가 당시 엄중히 경고한 '노예의 길'이 대재난의 여파 속에 오늘 다시 우리 코앞에 어른거린다. 정치권 여기저기서 온 국민에게 손짓한다. 알량한 현금 덥석 챙겨 동물농장으로 직행하라고. 어찌하랴, 배고픈 테스형으로 남는 것만이 나라가 사는 길인 것을.


[김홍범 경상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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