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작지만 유쾌한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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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은 리처드 닉슨이 대통령에 취임한 해이고 우드스톡 페스티벌이 열린 해이다. 닉슨은 유능한 정치인임을 불명예 퇴임 후에도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윤리라는 족쇄가 채워져 있었다. 우드스톡 페스티벌은 기득권의 위선에 저항하는 젊음을 지금까지도 뽐내고 있다. 한 시골 농장에서 열린 페스티벌에 40만명 이상의 젊은이들이 도대체 무엇 때문에 몰려들었던 것일까?


우드스톡 페스티벌에서 가장 널리 기억되는 장면 가운데 하나는 지미 헨드릭스의 미국 국가 연주이다. 록 스타일의 즉흥연주 사이에 흘러나오는 미국 국가는 지금 외국인이 들어도 감동적이다. 그러나 그 연주로 그는 적지 않은 비난을 받았다. 신성한 국가를 록 스타일로 연주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가 그런 식으로 국가를 연주할 수 있었던 것은 그보다 먼저 관행을 깨뜨리는 연주가 있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 또한 맹렬한 비난을 받았고 고초를 겪었다.

1968년 미국 프로야구 월드 시리즈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의 대결이었다. 처음 2차전은 세인트루이스에서 열렸고 결과는 1대 1이었다. 다음 세 번의 대결은 디트로이트에서 열리게 되어 있었다.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세 번의 경기 가운데 마지막 날 국가를 부른 가수는 요새 젊은이들이 잘 기억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되는 호세 펠리치아노라는 푸에르토리코 출신 맹인 가수였다. 당시 22세였다.


그가 부른 미국 국가는 솔(soul) 풍의 울부짖는 것이었다. 그 전까지 그 누구도 그런 식으로 미국 국가를 부른 적이 없다. 국가가 끝난 다음 환호보다는 야유가 빗발쳤다. 그는 모든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하차했다. 일자리도 끊겼다. 그가 원했던 것은 애국심의 다른 표현이었을 뿐 그 어디에도 나라와 국가에 대한 모독이나 오해를 살 만한 행위가 없었다. 핍박이 있었지만 그는 새로운 노래로 재기했다. 애국의 진심이 끝내는 평가를 받게 된 것이다.

요새 월드 시리즈를 보라. 미국 국가를 음표대로 부르는 가수가 있는지? 1968년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월드시리즈 5차전, 그 전 미국의 애국심은 음표에 있었다. 다른 식으로 표현하는 것은 애국심이 아니었다. 용납되지도 않았다. 우습지 않은가? 미국 수정헌법 1조는 종교와 언론의 자유에 관한 그 어떤 제약도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펠리치아노의 작은 혁명은 적지 않은 희생을 강요했다.


지금 검찰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대한민국은 쑥대밭이 되어 있다. 문재인 정부 이후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는 거대하고도 혁명적 시도와 조치들을 보면서 무엇을 위한 개혁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지난 4월 치러진 총선에서 집권여당이 압승하면서 그와 같은 시도들이 반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제는 대통령과 집권당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것 같다. 스스로 임명한 검찰총장까지 몰아내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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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폐청산, 소득주도성장, 검찰개혁, 수도이전, 재난기본소득, 그린뉴딜 등 그동안의 거대 화두들이 나라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그리도 급한 일인가? 그것이 양날의 칼임을 왜 모르는지.

결국 과거의 정권과 하나도 다르지 않은 적폐를 양산하면서 무슨 대단한 개혁을 하는 듯이 선전하는 것은, 모르고 그런다면 무능이요 알고 있다면 위선이다. 결국 구호에 그치고 말거나 개악의 빌미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을. 차라리 1968년 월드 시리즈 5차전에서 일어난 것과 같은 작지만 유쾌한 혁명은 우리에게 불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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