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협 대구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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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과 1380이라는 숫자가 갖는 의미는 크다.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연간 노동시간은 1967시간이다. 세계 1위 최장 시간 노동 국가라는 불명예는 2137시간의 멕시코에 넘겨줬지만, 한국 사회는 여전히 세계 최정상급의 장시간 노동 국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연간 근로시간이 가장 짧은 나라는 1380시간만 일하는 덴마크다. OECD 국가 대부분은 1500시간 내외다. 1900시간을 넘는 나라는 멕시코, 그리스(1949시간)와 한국뿐이다. 한국은 선진국인가?


1967년 한국의 주간 평균 노동시간은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58.8시간이다. 올해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을 놓고 논쟁을 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1인당 국민소득은 1987년 157달러로 전 세계 93위였다. 2019년에는 3만1431달러(국제통화기금(IMF) 기준)로 전 세계 28위다. 157달러에서 3만1431달러가 되는 동안 한국인들은 2018년 주 52시간 근로제가 도입되기 전까지 최대 주 68시간을 일했다. 우리는 잘사는 것일까?

한국 사회는 여전히 스스로가 선진국인지 되묻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이미 선진국 수준에 도달했음에도 사회적인 측면에서는 스스로가 선진국 수준에 해당한다고 자신하지 못하며, 실제로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외부의 시각 역시 긍정적이지 않다. 경제적 발전은 사회적 발전과 함께 가야 한다. 이러한 발전의 과정은 당연히 성장통을 수반한다.


저임금 장시간 체제를 혁신하지 않고는 한국 사회의 발전은 가능하지 않으며, 더 나아가 경제적 발전에도 족쇄가 된다. 한국 경제의 체질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 이유에 대해 많은 전문가는 일부 업종을 제외한 대부분 산업 업종에서 나타나는 낮은 노동생산성과 임금 경쟁을 지적한다.

미국ㆍ일본ㆍ유럽의 선진국과 경쟁하기에는 뭔가 2% 부족하고 뒤에서는 중국과 개발도상국이 추격하는 협공을 오래전부터 인지하고 있음에도, 경제와 산업의 구조 개편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낮은 노동생산성은 일부에서 지적하듯이 단순히 노동조합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 노조 조직률은 10%를 간신히 넘는 수준이다. 나머지 90%의 산업 영역에는 노조가 없다. 10%인 노조가 모두 강력한 조직력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한국 경제 및 산업의 고도화와 기술 혁신을 가로막는 저생산성의 이유는 장시간 노동에 있다. 노동생산성은 투입 노동시간 대비 산출량이다. 선진국은 1380시간 또는 평균 1500시간 정도를 일하고도 우리나라보다 높은 노동생산성을 보여주고 있다. 짧고 압축적으로 집중해서 일하는 방식이 더 효율적이라는 얘기다.


시간은 돈이다. 우리나라에서 장시간 노동이 중요시되는 것은 시간당 임금이 낮기 때문이다. 선진국은 짧게 일하고 더 많이 받는다. 이제는 우리도 더 많이 받지는 않더라도 짧게 일할 수준은 되지 않았을까?


최대 주 52시간으로의 노동시간 단축은 노동 존중이 아니다. 노동기본권의 확보다. 휴식이 있는 삶과 저녁이 있는 삶은 많은 사람이 원하고 있다. 근면성실하게 가족 같은 회사에서 과로사할 때까지 죽도록 일한 1970년대 노동자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내년부터는 50~300인 미만 사업장에 적용되는 유예 기간이 끝나고 주 52시간 근로제가 적용된다.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준비할 시간도 충분히 제공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핑계로 주 52시간 근로제 적용을 또다시 유예하자는 주장은 흘러가는 시간 앞에서 늙지 않고 싶어 하는 늙은이의 한숨과 같은 것이다. 주 52시간 근로제 실시는 만성적인 중소기업 인력난을 해소할 기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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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협 대구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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