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형제복지원 피해자들과 박준영 변호사가 15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형제복지원 원장 고 박인근씨의 특수감금 혐의에 대한 비상상고심 첫 번째 공판에 참석한 뒤 입장을 밝히고 있다.

부산 형제복지원 피해자들과 박준영 변호사가 15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형제복지원 원장 고 박인근씨의 특수감금 혐의에 대한 비상상고심 첫 번째 공판에 참석한 뒤 입장을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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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최석진 기자] 한국판 ‘아우슈비츠’로 불린 부산 형제복지원의 원장이었던 고 박인근씨의 특수감금 혐의에 대한 비상상고심이 무죄 판결이 내려진지 31년 만에 열렸다.


“1987년 사건이 만천하에 공개됐지만,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의 호소는 한 지성인의 죽음과 달리 관심을 받지 못했습니다. 인간의 권리는 평등한 것인가요?”

피해자 측 대리인인 박준영 변호사가 피해자들의 억울한 사연을 하나둘씩 소개해가자 법정은 눈물바다로 변해버렸다.


15일 오전 11시 서울 서초동 대법원 1호 법정에서 대법원 2부(주심 안철상 대법관)의 심리로 박인근 형제복지원 원장의 특수감금 혐의에 대한 비상상고심이 진행됐다. 이날 재판에는 40여명의 피해자도 참석했다.

형제복지원은 1975년부터 1987년까지 부랑인 수용시설로 운영됐다. 하지만 부랑인이 아닌 시민을 불법적으로 감금하고 강제노역과 구타, 성폭행을 일삼았다는 의혹이 무성했다.


먼저 검찰 측이 비상상고 이유를 밝혔다.


고경순 대검 공판송무부장은 “형제복지원은 1975년부터 약 3만8000명을 수용한 전국 최고의 부랑인 수용 시설이었다”며 “대부분 부랑인이 아님에도 일상적으로 강제노역과 구타를 당했으며 최소 571명이 사망하는 등 참상이 세상에 드러났다”고 말했다.


이어 “검찰은 형제복지원 원장 등을 특수감금 혐의로 기소했으나 2년 넘는 기간 7번 넘는 재판을 거치면서 특수감금의 점은 정당행위로 무죄가 확정돼 지속적인 비판이 이뤄졌고 2018년에 이르러서야 검찰과거사위원회에서 검찰총장의 사과와 특별법 제정 조치를 권고했다”며 “문무일 검찰총장은 2018년 11월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을 만나 직접 사과했고, 이 사건 비상상고를 제기하기에 이르렀다”고 비상상고에 이른 경위를 설명했다.


고 부장은 “비상상고 대상 사건의 공소사실은 피고인이 공모해 1978년 2월까지 168명 강제노역 시켰다는 것”이라며 “비상상고 대상은 첫 번째 항소심 대구고등법원 판결과 두 번째 파기환송심 판결”이라고 밝혔다.


이어 비상상고 이유에 대해 “해당 판결들은 형법 제20조의 법령에 의한 행위라는 이유로 위법성이 조각됐다고 판시했지만 형법 제20조의 법령은 합헌·합법인 법령을 의미하는 것”이라며 “보호시설 설치에 관한 규정은 있었지만 내무부 훈령과 같이 이탈 방지를 허용하거나 하위 법령에 위임하는 경우는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내무부 훈령은 명확성 원칙에 현저히 위배되고 과잉금지 원칙, 적법절차 원칙에도 위배된다”며 “피해자들에 대한 감금이 내무부 훈령에 따라 정당하다고 본 것은 형법 제20조를 잘못 해석·적용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고 부장은 “이번 비상상고를 통해 당시 조치가 법령에 근거하지 않았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피고인의 특수감금은 정당행위가 아니었고 피해자들이 감금당한 것이라는 사실을 천명하는 것이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우리 사회의 정의를 세우기 위한 최소한의 수단”이라며 “특수감금 무죄 부분을 파기해 주시기 바란다”고 밝혔다.


피고인측 진술에 나선 박준영 변호사는 “이 자리는 법리적 문제를 논하는 자리지만 형제복지원 사건의 경우 피해자들의 투쟁과 아픔에 대한 언급 없이 사건을 설명할 수 없다”며 “피해자들의 아픔과 투쟁의 시간들 설명하는데 많은 시간 할애하는 것에 양해를 부탁드린다”고 말하며 준비한 파워포인트(PPT)를 띄우기 시작했다.


이후 형제복지원에 1년8개월 수용됐던 강신욱씨의 진정서를 소개했다. 해당 진정서에는 1987년 전 국민의 관심과 이목이 집중된 박종철 사건으로 형제복지원은 잊혀졌다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박 변호사는 “절절한 형제복지원 피해자의 호소는 지성인의 죽음과 달리 관심받지 못했습니다. 이들은 지워졌습니다”라며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은 묻습니다. 과연 인간의 권리는 평등한 것인가”라고 호소했다.


이후 박 변호사는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겠다’는 취지의 김삼환·박상옥·노정희 등 대법관들의 취임사를 들려주며 “존경하는 대법관님. 우리 사회의 아픔에 공감해 주십시오. 내무부 훈령 제410호는 위헌입니다. 명확성의 원칙에 반합니다. 수용자들의 신체적 자유와 거주이전의 자유 명백히 반합니다”라고 거듭 훈령이 위헌임을 강조했다.


진술 말미 박 변호사는 “마지막으로 형제복지원 사건의 사회적 의미를 성찰하고 각성하게 한 유혜정 인권활동가의 글 ‘형제복지원, 그게 내 인생의 전부에요’를 인용하는 것으로 대신하겠다”고 말한 뒤 유 활동가의 글을 읽었다.


박 변호사는 “시간을 되돌려 과거를 새롭게 쓰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과거에 행해진 것을 현재에 말하는 것은 시간을 어떻게 쓰는지를 결정할 뿐만 아니라 아마도 미래의 행위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에 기초한다면 1987년 형제복지원에 대한 진상규명과 사과는 좌절됐지만 2020년 현재 형제복지원을 어떻게 기억하는가, 규명하는가 그리고 피해생존자를 위로하는가에 따라 새로운 기억과 미래 공동체가 만들어질 수 있다. 고통이 완화되고 치유될 수 있다. 이는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아온 피해 생존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억울하게 죽어간 이들에 대한 사회적 참회다. 또한 동시에 인간의 존엄이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한 여정이기도 하다. 비틀거리더라도 함께 걸을 수 있기를, 그들이 오늘보다 내일 조금 더 평온해질 수 있기를. 내리는 함박눈을 보며 나는 그렇게 빌었다”라고 해당 글을 읽으며 진술을 마무리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은 광범위한 피해가 발생한 사건이고 사회적·시대적 아픔이 있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어 우리 대법원으로서도 신중하게 재판하고 있다”며 비상상고 제도에 대해 설명했다.


비상상고 절차를 통해 과거 판결이 파기된다 해도 이미 사망한 박 원장에게 죄를 더 물을 순 없다. 즉 박 원장의 무죄 판결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재심과 달리 기존 판결의 위법 사항을 시정할 뿐 박 원장에게 유리한 재판 결과를 불리하게 뒤집을 수는 없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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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비상상고를 통해 사법부 스스로 과거 잘못을 인정하는 의미와 함께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 등에서 피해자들에게 도움이 될 여지는 있다.


최석진 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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