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길의 영화읽기]함께 사는 삶, 부탄의 행복 교육법
파우 초이닝 도르지 감독 '교실 안의 야크'
부탄의 국정지표는 국민총생산(GDP)이 아니다. 국민행복지수(GNH)다. 지그메 싱기에 왕추크가 1972년 왕위에 올라 제시했다. 영국·인도 등지에서 공부한 그는 이런 생각을 품고 있었다. "모든 나라의 정부와 국민이 경제적 부를 늘리기 위해 노력한다. 그것을 성취한 사람들의 생활은 안락하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국가의 부가 늘어도 빈곤하고 비참한 삶을 살아간다. 사회적으로 소외당하며 천대를 겪는다."
당시 부탄은 농업과 물물교환에 의존했다. 1인당 국민소득은 51달러. 평균 수명은 38세에 불과했다. 의사는 두 명, 학교는 열한 곳이 전부였다. GNH 증진을 국가발전 전략으로 채택하고 형편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여전히 최빈국이지만 사회·경제적으로 높은 성취도를 이뤘다. 정부는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공교육을 무상 제공한다. 의료 서비스도 무료다. 그 덕에 기대수명은 69세로 늘었다.
모든 정책에서 최우선 순위는 교육. 현 국왕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추크는 2014년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교육은 역량 강화로 사회적 형평을 실현함과 동시에 자아실현을 촉진해 개개인의 잠재력이 충분히 발휘되도록 한다. 좋은 교육은 자신감, 판단력, 선한 품성, 행복을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 좋은 학교는 아이들에게 공평한 성공 기회를 보장해 개인의 성취가 인종이나 부모의 신분, 성, 사회적 연고 등에 의해 결정되지 않도록 한다."
부탄에서 무상 의무교육은 쉬운 일이 아니다. 두메산골에 사람들이 흩어져 살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학생 수가 적어도 초등학교를 짓도록 강제한다. 어쩔 수 없이 학교를 세우지 못한 지역의 아이들은 이웃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게 한다. 분교에 교사를 한두 명 파견해 복식수업도 운영한다. 분교는 열 명 이상의 학생이 모여야 개설할 수 있는데 예비 초등학생(6세)부터 3학년생(9세)까지 받는다. 어린아이들의 원거리 통학을 막기 위함이다.
영화 '교실 안의 야크'에서 유겐(셰랍 도르지)은 루나나 분교로 전근을 간다. 인구 쉰여섯 명이 사는 고도 4800m의 벽지. 수도 팀부에서 여드레가 걸리는 데 그 중 이레는 등산길이다.
어렵사리 당도한 루나나 분교는 황량하기 이를 데 없다. 먼지만 수북이 쌓인 책상과 의자. 칠판은커녕 종이도 구하기 어렵다. 유겐은 울상이 된 얼굴로 촌장에게 토로한다. "솔직히 여기서 어떻게 가르치나 싶네요. 세계에서 가장 외진 학교잖아요. 전임 선생님이 뭘 어떻게 하셨나 몰라도 저는 못 하겠어요. 자원해서 온 것도 아니고. 돌아가고 싶어요. 교사 일도 원해서 한 게 아니에요."
파우 초이닝 도르지 감독은 유겐이 아이들을 가르치고 마을 주민들과 만나며 감화되는 과정에 주목한다. 바탕에는 사랑, 우정, 신뢰, 화목, 존경 등을 배치한다. 돈으로 살 수 없는 이런 가치들은 돈독한 인간관계를 이어주며 행복의 원천이 된다.
이는 사회·경제적으로도 큰 가치가 있다. 근래 중시되는 사회적 자본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사회적 자본이란 사람들이 어떤 공동 목적을 위해 조직이나 집단 구성에 나서고 상호신뢰 아래 협력하는 능력이다.
끈끈한 인간관계가 자본주의 선진국에서 점차 엷어진다는 우려는 오래 전부터 불거졌다. 아직 남은 곳은 시골이나 작은 마을 정도다. 대도시에서는 그런 관계가 사라지고 대신 가벼운 친구 관계가 비교적 활발하다. 넓고 즉흥적인 인간관계보다 깊고 친밀한 관계가 사람을 더 행복하게 만든다. 도시 규모에 따라 사람들의 행복 수준도 달라짐을 짐작할 수 있다.
경제학자나 시장주의자들은 이런 현상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인간은 원래부터 어느 정도 개인주의와 유물주의 성향을 타고나기 때문에 새삼스럽게 호들갑 떨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개인의 자유가 중요하기에 설령 개인주의와 유물주의가 조금 더 심해졌다 한들 문제될 게 없다고 본다. 하지만 인간은 혼자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어려울 때 서로 도우며 공동 이익을 추구해야 힘이 생긴다. 사회가 좋아지면 개인도 행복해지는 것은 물론이다.
루나나 주민들은 그들이 키우는 야크마저 공동체의 일원으로 생각한다. 이는 마음을 고쳐먹은 유겐과 촌장의 대화에서 엿볼 수 있다.
"선생님이 아이들을 많이 도와주셔서 모두 기뻐하고 있어요." "저도 기쁘게 생각해요." "다 전생의 인연이겠죠." "네, 제가 전생에 야크 목동이었나 봐요." "아뇨, 선생님은 그 이상이셨어요. 야크였을 거예요." "야크요?" "우리에게 많은 걸 주는 존재니까요."
야크는 주로 짐을 실어나르는 데 사용된다. 고기와 젖은 식용으로 소비된다. 루나나 주민들은 야크 젖으로 단단한 큐브 모양의 치즈와 버터를 만들어 먹는다. 분뇨는 말려 불을 지피는 심지로 쓴다. 주민들의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귀한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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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겐도 다르지 않다. 선진국과 후진국을 막론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의식주 결핍으로 고통받는다. 이보다 더 무서운 것은 앞으로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절망이다. 적절한 교육 기회와 건강한 생활이 보장돼야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유겐은 희망적인 복지 시스템을 가리킨다. 루나나 아이들의 말대로다. "선생님은 미래를 어루만지는 사람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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