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뒤엔 박근혜, 박근혜 뒤엔?…'2인자' 너무 세도, 없어도 부담
[기획] 20대 대선 D-1년 6개월, 대통령과 2인자(中)…너무 센 2인자 만난 이명박, 후계자 안 키운 박근혜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억장이 무너지는 아픔을 느꼈다.…저는 속았다. 국민도 속았다." 2008년 3월23일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의원은 국회 정론관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친박(친박근혜) 공천학살' 문제에 대한 정면 비판이었다.
당시 여당 수장이었던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는 물론이고 이명박(MB) 대통령을 겨냥한 비판의 메시지라는 분석이 이어졌다. 이 대통령이 취임한 지 한 달 만에 벌어진 일이다.
한나라당의 당내 '대주주'가 현직 대통령을 향해 직격탄을 날리는 상황은 'MB시대' 여권의 역학 구도를 상징하는 장면이었다. 실제로 정치인 박근혜는 여당 속 야당 역할을 하며 이 대통령 국정을 견제했다. 차기 대통령으로 유력하게 거론됐던 인물, 정치인 박근혜라는 존재는 이 대통령에게 정치적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한국 정치에서) 후임 대통령은 전임자가 임기 동안 했던 것을 뒤집고 심지어 감옥에 보낸 일도 있다"면서 "(정치적으로) 위협으로 느꼈을 것이고, 불안함으로 다가왔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두 사람은 정치적 라이벌이었다. 그들의 특별한 관계는 보수정당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대선후보 경선인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7년 8월20일 서울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열린 한나라당 전당대회는 차기 대선 후보를 결정하는 자리였다. 당시는 '한나라당 대선후보=대선 승리'라는 등식이 형성될 정도로 여론의 쏠림 현상이 나타났던 시기다.
이명박 후보가 경선에서 승리했지만 선거인단 투표는 박근혜 후보가 우위를 보였다. 박 후보는 선거인단 투표 결과 6만4648표(49.39%)를 얻었고, 이 후보는 6만4216표(49.06%)를 기록했다. 이 후보가 여론조사 경선에서 앞서면서 결과가 뒤집혔지만 끝까지 결과를 알 수 없는 흐름으로 이어졌다.
정치인 박근혜는 당시 대선후보 경선에서 패했지만 사실상 2012년 대선후보 자리를 예약해 놓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대통령은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여러 정치인을 키우고자 노력했지만 힘의 균형추는 이미 여당 실세(박근혜) 쪽으로 넘어갔다. 대통령 퇴임을 1년 앞두고 있던 2012년에는 그러한 경향이 더욱 뚜렷해졌다. 2012년 4월 제19대 총선에서는 이 대통령과 가까웠던 친이(친이명박) 핵심 인사들이 공천에서 대거 탈락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 대통령이 너무 센 2인자를 만나 정치적 험로를 경험했다면 박근혜 대통령 시절에는 여권의 정치 권력 2인자가 뚜렷하지 않은 게 문제였다. 박 대통령은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2인자를 키우지 않는 특성을 보였다. 청와대 중심의 국정 운영을 추구하면서 정국의 주도권을 쥐려고 했지만 '정치 리스크' 관리에 취약한 모습을 노출했다.
'최순실 사태'가 터지면서 정국은 소용돌이에 빠졌다. 2016년 12월9일 새누리당 의원들을 포함한 234명의 여야 의원들이 '탄핵소추안'을 통과시키면서 박 대통령은 국가원수 지위를 사실상 내려놓아야 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으로 2017년 5월9일 조기 대선이 열리게 됐는데 새누리당은 대안이 마땅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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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과 2인자의 관계라는 측면에서 이 대통령과 박 대통령은 정반대의 상황을 경험했다. 정치적으로 강력한 2인자가 곁에 있는 것 못지않게 차기를 책임질 인물이 부재한 상황도 현직 대통령에게는 부담이다. 야당에 정권을 내주게 된다면 자신이 펼치고자 했던 국정철학도 단절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퇴임 이후에도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는 모습은 한국 정치에서는 보기 힘든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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