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역대 일본 총리 중 장기 집권한 순위를 꼽으면 아베 신조, 가쓰라 다로, 사토 에이사쿠, 이토 히로부미 등의 순이다. 최소 7년 이상 장기 집권한 이들은 공교롭게 출신 지역이 동일하다. 바로 아베 총리의 지역구인 야마구치현으로 과거 메이지유신기 이전에 '조슈'라고 불린 지역이다.
조슈는 일본 본토에서 규슈로 넘어가는 간몬해협에 위치한 지역으로 근ㆍ현대 일본 보수 정치가 탄생한 곳으로 알려진 땅이다. 메이지유신 이래 150년 넘는 시간 동안 조슈 군벌이라 불리던 이 지역 출신 군인과 정치가들은 일본 천하를 쥐락펴락했다. 아베 총리의 정신적 지주로 알려진 그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 역시 조슈 군벌 출신이었다.
이들은 과거 일제의 대외침략 정책을 주도한 매파로 철저한 군국주의자였다. 아베 총리가 개인적으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라 찬사해 마지않은 메이지유신기 학자 요시다 쇼인은 근대 일본에서 처음으로 한반도를 식민지화하자는 정한론을 주장한 인물이다. 역시 조슈 출신인 그의 사상은 일본 대외침략론의 근간이 됐다.
조슈 군벌은 일본의 개항 초기에는 러시아를 비롯한 서양 세력의 침략을 막기 위한 군비 확충을 주장했고, 일제의 자기 방어가 가능해진 이후인 19세기 말부터는 대외 식민지 확보만이 일본의 살길이라며 대외 팽창 정책을 추구했다. 이들의 군국주의 이념에 따라 한반도와 만주, 중국 전역은 물론 동남아시아의 많은 국가가 일제의 군홧발에 짓밟혔다.
그러나 군국주의는 실제 일본 국민의 삶을 개선하는 데 조금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 부국강병을 명분으로 한때 전체 예산의 90%를 웃돌던 국방비를 대기 위해 일본 국민은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다. 하지만 그 대가로 맞이한 것은 세계사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실전에 투입된 핵무기와 참혹한 패망뿐이었다.
그럼에도 조슈 군벌의 그림자는 전후 일본의 정치에도 짙게 드리워졌다. 야마구치현 출신 총리들의 재임 기간만 합쳐도 40년이 넘어간다는 것은 일본 정치에서 조슈 군벌의 영향력이 얼마나 강했는지, 또한 이들이 주창한 '대동아공영론'이란 대외침략론이 얼마나 뿌리 깊게 박혔는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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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총리가 사임하고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유력 후임으로 거론되면서 일본에서는 역사상 처음으로 지역 연고나 군벌, 세습과 관련 없는 평민 총리가 나올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그 역시 일제의 괴뢰인 만주국 산하 남만주철도 군무원이던 아버지 밑에서 자라난 소위 황국신민이다. 일본에서 조슈 군벌의 그림자는 여전히 걷힐 생각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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