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총리의 할아버지, 태평양전쟁 당시 반전운동 정치인
아버지도 반전평화, 노동운동 앞장섰는데...아들은 극우로
태평양전쟁 A급 전범,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의 영향받아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AD
원본보기 아이콘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아베신조 일본 총리의 갑작스러운 사임 표명 이후 일본 정국이 혼란에 빠졌습니다. 역대 최장기 집권 총리의 공백을 메꿀만한 후계자가 당장은 보이지 않기 때문으로 알려졌죠. 아베총리가 집권 이후 강력하게 밀고왔던 경제정책인 아베노믹스를 비롯해 발등의 불처럼 떨어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는 물론 일본의 재무장과 우라나라 등 주변국과의 외교문제와 같이 산적한 문제들을 누가 해결할 수 있을지 미지수입니다.


외신들도 일제히 아베총리의 사임에 대해 크게 다루고 있습니다. 그의 프로필을 다루면서 가장 많이 비춰지는 인물은 태평양전쟁 당시 일제의 괴뢰국인 만주국 경영에 앞장섰던 경제관료 출신의 A급 전범인 기시 노부스케입니다. 아베총리의 외할아버지이면서 그를 일본의 대표 우익정치인으로 향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로 알려져있죠. 전후 정치가로서 기시 노부스케는 총리직을 역임했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 일본의 여당인 자민당을 창립한 인물로도 유명합니다.

그러나 정작 아베총리의 할아버지인 아베 간 중의원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습니다. 기시 노부스케에 대비해 외부에 잘 알려져있지 않지만, 일본 내에서는 태평양전쟁기에 목숨을 걸고 반전평화론을 주장한 소신있는 정치가로 알려져있는데도 말이죠. 아베총리 자신도 늘 외할아버지를 언급할 뿐, 할아버지에 대해서는 잘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아베신조 일본총리의 할아버지이자 일본의 반전평화운동 정치가로 알려진 아베 간 중의원의 모습[이미지출처=야마구치현 홈페이지]

아베신조 일본총리의 할아버지이자 일본의 반전평화운동 정치가로 알려진 아베 간 중의원의 모습[이미지출처=야마구치현 홈페이지]

원본보기 아이콘


마이니치 신문에 따르면 아베 가문은 일본 야마구치현에 살던 대지주 가문으로 할아버지인 아베 간 중의원은 1942년 태평양 전쟁 당시 도조 히데키가 이끌던 전쟁내각을 비판하며 전쟁에 반대했던 반전평화론자로 알려져있습니다. 당시 일제는 1940년, 모든 정당을 강제해산한 뒤 정당 통제기구인 '대정익찬회'라는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이후 일제의 대동아공영권 논리에 걸맞는 인물들만 후보로 추천을 받아 지원해주며 자신들 입맛에 맞는 의원들만 뽑게 만들었죠.

이런 시절에도 아베 간 의원은 용감하게 도조 내각과 맞섰고, 무소속으로 나와 자신의 고향인 야마구치현에서 당선되는 저력을 보여줬습니다. 경찰의 탄압과 갖은 회유를 이겨낸 결과였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일제의 패망 직후인 1946년, 심장마비로 숨을 거두면서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하게 됩니다.


이후 그의 반전평화론은 아들인 아베 신타로에게 이어졌습니다. 아베 신타로는 원래 마이니치신문사 기자였다가 정치계에 입문한 인물로 우리의 외무부장관직인 외무상을 역임했던 정치인으로 알려져있죠. 그는 선배기자의 소개로 기시 노부스케의 딸인 요코와 만나 결혼한 후 장인의 비서관으로 들어가 정치에 입문했습니다. 그렇지만 장인과 정치색이 완전히 다른 인물이었죠. 1985년 신타로 외무상은 중의원 외교위원회에서 "세계대전은 일본을 망국의 위기에 빠뜨린 매우 잘못된 전쟁이라고 생각한다. 국제적으로도 이 전쟁은 침략전쟁이었다는 비판이 있으며 정부는 그런 비판을 충분히 인식하며 대응해가야 한다" 주장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아베신조 일본 총리의 외할아버지이자 그의 사상에 절대적 영향을 끼친 인물로 알려진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의 모습[이미지출처=일본 총리실 홈페이지]

아베신조 일본 총리의 외할아버지이자 그의 사상에 절대적 영향을 끼친 인물로 알려진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의 모습[이미지출처=일본 총리실 홈페이지]

원본보기 아이콘


아베 신타로는 1991년 자민당 간사장에 선출되며 강력한 차기 총리 후보로 물망에 올랐지만 안타깝게 췌장암으로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생전에 자신이 비서관으로 정치에 입문시킨 둘째아들, 아베신조가 자신의 뒤를 이어줄 것이라 믿었지만 아베총리가 뒤를 이은 것은 그의 아버지가 아닌 외할아버지였죠. 어릴 때부터 아버지에 대한 반감이 컸던 아베총리는 아버지의 뒤를 이을 생각이 조금도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아베총리와 아버지 아베 신타로의 관계는 썩 좋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일본 주간지 슈칸포스트에 따르면 아베총리의 할아버지, 아버지는 모두 도쿄대 법대 출신으로 늘 아베총리에게 "우리가문에 대학이란 도쿄대 밖에 없다"며 공부를 강요했고, 아베총리는 여기에 대한 반발이 심했다고 알려져있죠. 아베총리는 아버지의 기대와 달리 입시없이 들어가는 사립학교인 세이케이대학에 입학했고, 고베제강에 입사해 다니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강제로 그만두게 해서 자신의 비서관으로 들어오게 했죠.

AD

여기에 비해 기시 노부스케는 자신의 외손자를 매우 총애했던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아베총리는 어린 시절부터 기시 노부스케의 손자라고 자신을 칭하고 다녔고, 존경하는 인물은 메이지유신기에 정한론 등 대외 강경책을 주장한 요시다 쇼인이라 말하고 다녔다합니다. 아베총리가 자신의 가문보다 외가를 더 중히여기고 그 사상을 이은 이유는 명확치 않지만, 아버지와의 관계가 큰 영향을 끼친 것은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죠. 그의 가정 내 관계가 향후 일본은 물론 동북아시아 전체 역사에 이렇게 큰 영향을 끼치리라곤 아베 신타로 자신도 몰랐을 것이란 후문입니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