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임 전액배상 결정 D-1]분쟁조정 새 이정표 VS 최악의 선례
[아시아경제 김효진 기자] 라임자산운용 무역금융펀드(플루토 TF-1호) 판매사들이 '착오에 의한 계약취소'를 적용해 사상 처음으로 투자원금 전액 배상 조정안을 받아들이기로 하면서 향후 금융권 전반에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금융감독원 입장에선 사상 첫 전액 배상을 통해 소비자 보호라는 금융분쟁 조정사(史)의 이정표를 세우게 됐지만 금융권에는 사실상 분쟁의 모든 책임을 판매사가 떠안는 최악의 선례가 남게 됐다.
당장 라임운용의 여타 펀드들을 비롯해 환매 중단된 옵티머스 등 다른 사모펀드의 배상에도 이번 결정이 기준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안전한 금융기관'이라는 이미지에도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이 같은 부담에도 불구, 판매사들이 조정안 수락으로 가닥을 잡은 건 금감원과의 대립 구도에 상당한 부담을 느꼈기 때문이라는 시각이 높다. 특히 하나은행과 우리은행의 경우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징계 문제로 금감원과 법정분쟁을 벌이고 있는 터라 조정안을 불수락했을 때 불이익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하는 눈치다. '소비자보호를 경시하는 금융회사'라는 여론의 비난에 직면하는 것 또한 달갑지 않은 요소로 지적된다.
판매사들, 금감원과 대립 부담 관측
라임운용에 구상권 청구, 실효는 난망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ㆍ하나은행을 포함해 신한금융투자, 미래에셋대우 등 라임 무역금융펀드 판매사들의 입장은 '우리도 라임자산운용의 범죄에 따른 피해자'라는 것이다. 이런 입장에도 불구하고 금감원 조정안을 받아들일 경우 주주들에 대한 배임 논란에 휘말릴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분쟁조정위원회 조정안이 나온 뒤로 지속된 법리검토를 통해 이 문제는 어느정도 해소된 것으로 알려졌다. 임의로 배상행위를 하는 게 아니라 분쟁조정이라는 제도에 의거하는 것이라서 별다른 문제는 없다는 것이다.
판매사들은 일단 배상을 실행한 뒤 라임운용에 구상권을 청구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라임운용의 실정을 고려할 때 녹록하지는 않을 것이란 관측이 높다. 판매사들 사이에서는 "원칙적으로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을 뿐, 결과에 대한 기대는 매우 낮다"는 말이 흘러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들은 "앞으로 사고가 터지면 운용사는 물론이고 판매사 또한 '일단 배상'이라는 프레임에 갇히게 될 우려가 높아졌다"고 토로한다.
윤석헌 금감원장 '압박·당근' 영향 분석도
사모펀드 시장 경색은 불가피할 전망
윤석헌 금감원장이 전일 임원회의에서 '경영평가에 반영하겠다'는 압박성 메시지를 내놓은 것도 수락에 부정적이던 일부 이사회 구성원들의 의중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조정안이 도출된 직후도 아니고 결정 시한이 불과 이틀 남은 상황에서 나온 언급이라 의미가 작지 않았을 듯하다"면서 "표면적으로는 기대를 내비친 수준이었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곳은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에서는 윤 원장이 "분조위의 조정 결정 수락 등 소비자보호 노력을 금융사에 대한 금융소비자보호 실태 평가와 경영 실태 평가에 반영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라"고 주문한 것이 갈팡질팡하던 판매사들에게 수락의 명분을 일부나마 제공했다는 해석도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융사들 사이에는 금감원의 감독지침을 충실히 이행해도 별다른 반대급부가 없는 데 대한 불만이 항상 있었다"고 말했다.
이번 결정이 가뜩이나 움츠러든 사모펀드 시장을 더욱 얼어붙게 만들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내 시중은행들의 사모펀드 판매잔액은 올 6월 말 기준 21조8667억원으로 1년 전에 비해 7조원 넘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5년 전인 2015년 6월 말 13조8700억원 규모였던 사모펀드 판매잔액은 진입 규제 완화를 통해 사모펀드 활성화를 꾀한 정부 정책에 힘입어 급속히 증가해 지난해 7월 말 29조원으로 정점을 찍은 후 꾸준히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 들어 감소분은 3조5000억원에 이른다.
'편면적 구속력案' 등 소비자보호 기조 강화 예상
"금감원 분쟁조정의 전면적 실효화" 관측도
소비자보호를 명분으로 한 금감원의 드라이브는 앞으로 더 거세질 전망이다. 특히 윤 원장이 주장하고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관련 법 개정안 발의로 뒷받침하는 편면(片面)적 구속력 방안이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일정 규모 이하 사건의 분쟁조정안은 소비자가 수락하면 금융회사의 의사와 무관하게 효력을 갖도록 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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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과 이 의원은 2000만원 이하 규모의 사건을 이 범주에 넣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는데, 이렇게 되면 전체 분쟁조정 사건 중 80%의 사건에서 금융사의 재판청구권이 박탈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라임 관련 전액배상 조정안이 성립되고 향후 편면적 구속력 방안이 제도화하면 금감원 분쟁조정의 전면적 실효화가 이뤄지는 셈이라고 해석할 여지도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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