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 법치와 정치, 모두 중요하다
법대로 하자, 정치로 풀자. 현안을 놓고 '정치적으로 해결했다'고 하면 뭔가 찜찜하다. 왜곡된 한국 현대사가 낳은 인식이다. 국회가 지탄받고, 검찰 개혁이 사회를 달구는 배경이 되고 있다. 서구 민주정치의 기본 원리로서 법치주의. 그를 공고화하기 위해 검찰 등 권력기관의 권한 분산. 정치와 법치가 균형있게 작동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탈이다. 권위주의 정권 이래 법치, 정치가 어찌 꼬여 왔는지 살펴야 해법이 나온다.
1980, 90년대 대형비리 사건이 터지면 검찰, 경찰 출입기자만 바쁜게 아니었다. 고급 정보는 청와대, 집권 여당에서 나왔다. 당시에는 안가(安家)회의가 있었다. 청와대의 비서실장과 관련 수석. 여당의 사무총장과 원내총무(지금의 원내대표). 안기부장(지금의 국정원장)과 법무부 등 관련 장관. 집권 세력의 실세들이 한자리에 모여 사실상 사법 판단을 내리는 자리였다. 안가회의 결정을 대통령이 재가하면 끝이었다. 구속, 기소 등 후속 법적 절차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때문에 안가에서 관계기관 대책회의가 열린 사실이 알려지면 그때부터 취재 전쟁이었다.
정치권이 연루된 비리사건에서 중요한 것은 안배였다. 야권 인사만 사법처리하면 정치탄압 비판이 나온다. 여당 의원 역시 적절히 끼워 넣어야 한다. 안가회의 참석자로부터 여야 3대3 구색을 맞췄다는 얘기를 들었다. 사법처리 대상 뇌물액수를 3천만원 수준으로 정리했다는 말도 했다. 비리 혐의가 워낙 뚜렷하면 봐주기 힘들다. 하지만 경계선은 정치적으로 판단하는 분위기였다. 여권이 어려움에 처하면 검찰을 중심으로한 사정기관이 전면에 등장했다. 사정정국의 긴장을 조성하는게 일상적 통치 방식이 되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안가를 철거했다. 안가회의 역시 사라졌다. 문제는 여야 정치권의 의식이었다. 안가회의의 추억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다. 박근혜 정권에서 구속 후 풀려난 전직 국회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감옥 갈 일 안했다. 여야 의원 끼워넣기의 희생양"이라고 억울해 했다. 시민사회는 빠르게 변하는데 보수, 진보 모두에 안가회의가 아직도 자리잡고 있다.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관련 입법이 되어도 안가회의의 유혹을 떨치지 못하면 검찰 개혁 논란은 답이 없다.
청와대, 여당은 물론 야당도 안가회의의 망령에서 벗어나야 한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정치 야심을 갖고 있는지는 별개로 해놓고 생각해보자. 검찰은 당연히 집권세력 편이어야 한다는 범여권의 잠재의식이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한다. 범야권도 마찬가지다. 자신들이 유리할 때만 법치를 외친다. 정권을 다시 잡으면 검찰력을 동원해 손보겠다는 얘기를 공공연히 한다. 검찰 역시 성찰이 필요하다. 안가회의 결과를 충실히 수행하면서 힘이 세지고, 장차관급 등 대우받는 자리가 늘어난 과거를 되새겨야 한다.
정치와 법치는 나란히 가야 한다. 그릇된 정치가 법치를 압도했던 안가회의 시절은 지나갔다. 그렇다고 법치가 정치를 눌러서도 안된다. 정치의 본령은 상호이해 조정이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은 다수결, 법치를 앞세우다가 지지율이 오히려 떨어지기도 했다. 정치적 타협 역시 중요하다는 반증이다. 우선 정치의 영역을 상호 고소, 고발로 혼란스럽게 하지 말기 바란다. 지지층들도 자제하도록 정치인들이 설득했으면 한다. 검찰이 됐든, 경찰이 됐든 수사기관에 정치의 목줄을 수시로 넘겨서는 안된다. 청와대 회담을 비롯한 여야 수뇌회동 정례화, 국회 상임위원장직 재배분 등 정치를 되살리는 길은 얼마든지 있다. 코로나19, 경제 난국, 수해 등 국가적 어려움을 맞아 여야가 정치복원 선언식을 갖는 것도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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