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현지시간)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 항구 내 창고에 적재됐던 질산암모늄 2750t이 폭발해 잿더미로 변한 베이루트 항구의 모습[이미지출처=AP연합뉴스]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조선 시대 화약을 제조하던 기관인 군기시의 관리들은 하루의 대부분을 남의 집 화장실을 들쑤시고 다녔다고 알려져 있다. 민가와 관가, 심지어 궁궐에서 임금이 쓰는 화장실까지 뒤지면서 이들이 변소를 급습해 행패를 부린다는 상소가 빗발쳤다.
그러나 이들의 행동에 대해 임금은 언제나 용서했다. 전략물자인 화약을 만들기 위한 불가피한 작업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이들이 화장실에서 찾던 것은 당시엔 '염초'라 불린 질산암모늄이 들어간 퇴비였다. 조선 시대에는 화장실에서 인분 위에 재를 뿌려 퇴비를 만들곤 했는데, 이 퇴비에서 질산암모늄을 적은 양이나마 구할 수 있었다. 퇴비 한 가마니를 정제해야 고작 밥그릇 정도 크기의 질산암모늄을 구할 수 있었지만 이것을 정제해 숯과 유황을 섞어 전쟁에 쓸 화약과 각종 폭발물을 만들었다.
화학비료가 제조되기 시작한 20세기 이후로는 비료공장 자체가 군용 화약 제조를 위한 군사시설 취급을 받았다. 일제가 1927년 함경남도 흥남에 조선질소비료주식회사를 세운 것도 만주 침략을 목표로 화약을 대량 제조하기 위한 조치였다. 전쟁 말기에는 이 비료공장에서 핵개발을 위한 우라늄도 함께 추출된 것으로 알려졌고,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북한의 핵개발에도 이용된 정황이 보고되기도 했다.
이처럼 폭발물로 전용되기 쉬운 비료는 2차 대전 전후로 개인이 허가 없이 외부에 수출하거나 수입할 수 없는 전략물자로 지정됐다. 미국에서는 농부가 아닌 사람이 갑자기 비료를 대량 구매하면 중앙정보국(CIA)의 조사 대상이 되기도 한다. 1995년 미국 오클라호마시티 연방정부청사에서 발생한 폭탄 테러에 테러범이 2t 이상의 질산암모늄 비료로 만든 폭탄을 사용한 뒤로 비료 구매자 신원조사가 강화됐기 때문이다.
이토록 위험한 물질임에도 안전불감증으로 발생하는 사건ㆍ사고는 끊이질 않았다. 오히려 무더운 날씨에 쉽게 폭발하는 니트로글리세린이나 물과 닿으면 위험한 나트륨 같은 폭발물질들보다 큰 사고들이 일어나곤 했다. 2015년 톈진 항구의 비료창고에서 발생한 화재나 2013년 미국 텍사스 비료공장 화재에서도 대형 폭발이 일어나 많은 인명 피해가 났다. 이는 모두 질산암모늄을 위험한 폭발물보다는 비료라 생각해 쉽게 다루다 발생한 사고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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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산암모늄 비료는 매우 강한 불길이 닿지 않는 이상 웬만해선 폭발하지 않는 꽤 안정적 형태를 갖고 있다. 그러다 보니 관리가 소홀해지거나 오랫동안 방치되기 쉽다. 그 안이한 안전불감증이 한때 '중동의 파리'라 불리던 도시를 단 1분 만에 잿더미로 만든 대재앙의 문을 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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