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그날엔…] 보수정당에 경북보다 서울이 만만했던 총선이 있었다?
18대 총선, 한나라당 서울 후보 당선 확률 83.3%, 경북은 60%…뉴타운 바람에 전통적 민주당 강세지역까지 싹쓸이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정치, 그날엔…’은 주목해야 할 장면이나 사건, 인물과 관련한 ‘기억의 재소환’을 통해 한국 정치를 되돌아보는 연재 기획 코너입니다.
그날까지 보수정당의 총선 역사상 서울에서 30석 이상을 차지한 사례는 없었다. 그날 이후에도 없었다. 보수정당의 명맥을 이어왔던 정당 역사상 최대의 승리로 기록될 그날에 대한 얘기다. 그날은 2008년 4월9일 제18대 총선일이다.
서울은 민정당, 민자당, 신한국당, 한나라당, 새누리당, 자유한국당을 거쳐 지금의 미래통합당에 이르기까지 보수 정당에 만만한 지역이 아니었다. 상대적으로 지역색이 옅고 젊은층이 많이 산다는 점도 보수정당이 고전하는 이유였다.
그러나 18대 총선은 달랐다. 한나라당은 서울 48개 지역구 중 40개 지역에서 승리했다. 전통적인 강세 지역인 강남권은 물론이고 민주당 쪽의 아성으로 인식됐던 강북의 주요 지역까지 사실상 싹쓸이했다.
서울 마포갑(강승규), 마포을(강용석), 도봉갑(신지호) 등의 지역은 한나라당 승리로 끝이 났다. 특히 도봉갑에서 김근태 통합민주당 후보(당시 현직 의원)가 신지호 한나라당 후보에게 패배한 것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김근태 후보는 46.16%, 신지호 후보는 48.04%를 얻어 신 후보가 당선됐다. 정치인 김근태는 민주화운동의 대부로 불린 상징적인 인물이다. 2008년 제18대 총선에서 민주당이 고전할 것이란 예상은 있었지만 김근태 후보는 당선될 것이란 관측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러한 관측과 달리 정치인 신지호가 정치인 김근태의 아성인 도봉갑의 승자가 됐다.
주목할 부분은 18대 총선이 한나라당이 압승한 선거로 보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150석을 넘기기는 했지만 기대보다 낮은 의석을 얻었다. 압승은 예견됐고 어느 정도의 승리를 거둘 것인지가 관심인 선거였다.
18대 총선은 이명박 대통령 취임 직후 열린 선거였다. 여당이 유리한 흐름에서 치렀는데 공천을 둘러싼 잡음이 한나라당의 발목을 잡았다. 실제로 친박(친박근혜) 성향의 후보들이 친박연대와 친박 성향 무소속으로 출마해 선전했다.
경북 15개 지역 중 한나라당은 9석을 차지했고, 무소속 5석, 친박연대 1석을 차지했다. 한나라당은 전통적인 강세 지역인 경북에서 지역구 60%를 차지했다. 우수한 성적표라고 볼 수 있지만 기대 수위에는 미치지 못했다.
흥미로운 대목은 서울의 성적표다. 한나라당은 서울 48개 지역 중 40개 지역구에서 승리해 승률 83.3%를 기록했다. 경북보다 서울 성적표가 더 좋았다는 얘기다.
한나라당 입장에서 만만하지 않았던 18대 총선에서 서울은 기록적인 압승을 거뒀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명박 대통령 당선과 맞물려 서울에서 거세게 불었던 ‘뉴타운 바람’과 무관하지 않았다.
뉴타운 소용돌이는 서울 지역구 곳곳을 휩쓸었고 민주당은 정상적인 선거를 치르기 어려울 정도로 고전했다. 한나라당 후보가 주도하는 뉴타운 공약에 민주당 후보들도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집값 시가총액이 1995년 통계 집계 이래 처음으로 5천조원을 넘어섰다. 집값 시가총액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배율도 역대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올랐다. 26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국내 주택 시세의 합인 주택 시가총액(명목)은 5천56조7천924억원으로, 한 해 전(4천709조6천118억원)보다 7.4% 증가했다. 사진은 이날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아파트 모습./김현민 기자 kimhyun81@
원본보기 아이콘서울 시민들은 뉴타운이 성사되면 막대한 개발 이익과 시세 차익을 거둘 수 있다는 꿈에 부풀었다. 뉴타운이 실현되기까지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았지만 '이성적인 의문'은 설자리를 잃었다.
그렇게 서울 선거는 뉴타운으로 시작해 뉴타운으로 끝이 났다. 18대 총선은 여러 의미에서 정치사에 기록될 선거였다. 특정 정책이 상대 정당의 정치적 텃밭을 뿌리부터 흔들어 놓을 수 있다는 게 확인됐고, 민심의 급격한 변화가 가능하다는 점이 증명됐다.
뉴타운 소용돌이에 휩싸였던 서울 표심은 그 이후에도 유지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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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9대 총선에서도 새누리당은 과반수가 넘는 의석을 획득했지만 서울은 18대 총선 결과와 많이 달랐다. 18대 총선 당시에는 서울에서만 40명의 국회의원 당선자를 냈지만 19대 총선에서는 16명으로 쪼그라들었다. 마포갑(노웅래), 마포을(정청래), 도봉갑(인재근)은 민주통합당 후보가 탈환했다. 뉴타운 바람몰이의 파괴력은 그리 오래 유지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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