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직적 위계 구조인 공직사회, 민간기업보다 성희롱 응답 높아
아직까지 '딸 같아서', '실수로' 성인지 교육 부족
전문가 "위계 성폭력의 경우 관리·감독할 독립 기관 필요"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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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수완 기자] "이런 것도 성희롱인가?", "딸 같아서 격려 차원으로 한 건데?", "글쎄. 기억 안 납니다."


공직 사회 내 성희롱·성추행 사례에 나오는 가해자들의 일관된 태도를 보면 대부분 자신이 저지른 성범죄를 안일하게 인식한다는 지적이 있다. 피해자들의 호소에도 사실상 별일 아니라는 취지로 일관해 아예 공무원 조직이 성인지감수성이 없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는 수직적 위계 구조인 공직사회의 범죄 예방 대책 부족, 사후 대처 미흡 등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했다.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전직 비서 A 씨를 4년간 지속해서 성추행했다는 폭로가 나온 이후 공무원 내부에서는 성희롱 폭로가 지속해서 나오고 있다.


16일 한국여성의전화와 한국성폭력상담소가 낸 입장문에 적혀 있던 서울시 공무원들의 성희롱 피해 사례에 따르면 피해자들은 '회식 때 노래방 가서 허리감기, '술 취한 척 뽀뽀하기', '바닥 짚는 척하며 다리 만지기' 등 성폭력을 겪었다.

이처럼 피해 사례가 갑자기 공개되는 배경에는 피해 사실을 제대로 알릴 수 없는 공무원 특유의 조직 문화와 연관이 있다는 지적이 있다.


피해자가 직접 나서 성폭력 피해 사실을 폭로해도 결국 누군가 이 사실을 알아내 무마되거나 결국 공론화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주무관 A 씨는 "상급자 대부분이 아버지뻘 되기 때문에 피해 사실이 있어도 어디 말할 곳이 없다"라며 "대부분 친한 동료들과 사실을 털어놓으며 서로를 위로하는 일이 전부"라고 토로했다.


이어 "가해자 대부분이 문제를 지적하면 그건 성희롱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딸 같아서 동료끼리 할 수 있는 가벼운 접촉이었을 뿐이라고 발뺌한다. 처벌을 받는 일도 적다"라면서 "신고 체계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용기 내 신고한 피해자의 경우 오히려 평판만 나빠지게 된다. 공무원 사회에서는 소문이란 쥐약과 같다"라고 호소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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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다 보니 공무원 조직에서의 성폭력 실태는 민간 기업보다 심한 수준이다.


여성가족부가 지난 2018년 발표한 성희롱 실태조사에 따르면 공공기관에서 2015년부터 3년간 성희롱을 경험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16.6%로 민간기업(6.5%)보다 10% 이상 높았다.


공직자의 위력에 의한 성범죄가 잇따라 문제가 되자 관련 지침 등이 마련됐지만, 실제 실효성은 떨어지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여성가족부는 공공기관 성희롱 고충상담원을 지정하고 상담창구를 만드는 등 예방지침을 마련했으나, 문제는 끊이지 않고 있다.


앞선 조사에서 성희롱 경험 비율은 지방자치단체가 28.1%로 가장 높았고, 국가기관 13.9%, 초·중·고교10.9%, 대학 종사자들 20%가 성희롱 피해를 겪었다고 응답했다.


성희롱 발생 장소 역시 위력이 발휘되기 쉬운 장소에서 일어났다. 주요 발생 장소로는 회식 장소(43.7%)와 사무실(36.8%) 등이 가장 높게 조사됐다.


특히 공무원의 경우 성희롱 등 성비위를 저지르면 최대 파면까지 당할 수 있지만, 성폭력이 얼마나 큰 범죄인지 등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주무관 B 씨는 "내부에서는 쉬쉬하는 경향이 있다. 피해자는 승진, 평판 등의 문제로 억울해도 참는 경우가 많다. 이런 문제로 사표를 쓰는 사람도 봤다"라면서 "이른바 '꼰대 문화'가 뿌리 깊게 자리 잡아 계속해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 같다. 신고를 못 하니 가해자가 처벌을 받는 일도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런 사람들의 성인지 교육도 문제다. 교육도 잘 안 이루어질 뿐만 아니라 이런 성희롱, 성추행이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을 못한다는 게 제일 크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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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 내에서 성폭력·성희롱이 발생하면 누구나 이를 신고할 수 있고, 소속기관장 등은 지체 없이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는 국가공무원법이 무색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개정된 양성평등기본법에 따르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소속 모든 공무원은 반드시 성인지 교육을 받아야 한다. 또한, 성희롱 사건 발생 시 3개월 이내에 여성가족부 장관에게 재발방지대책을 제출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지만, 실제로는 지켜지지 않았다.


여성가족부가 지난 2018년 '공공부문 성희롱·성폭력 방지조치 특별점검' 차원에서 온라인 조사를 한 결과, 공공기관 종사자 23만2000명 중 6.8%가 '최근 3년간 성희롱, 성폭력의 직접 피해를 입었다'고 답했다. 피해자의 67.3%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그냥 넘어갔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성폭력 신고를 해도 관련 대처가 미흡해 피해를 호소한 피해자가 극단적 선택에 이른 경우도 있었다. 지난 11일 임실군청의 한 40대 여성 공무원은 과거 자신에게 성폭력을 가한 간부와 일하게 돼 괴롭다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받은 간부는 "회식 자리에서 술 한 잔을 먹거나 그런 자리가 한 번도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관계가 없다"고 해명했다.


유족은 "목숨을 끊어가면서 피해를 증명했는데,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어떤 것이 사실이냐"며 조속한 수사를 촉구했다.


앞서 피해자는 관계 부서에 성폭력 피해 사실을 알린 바 있다. 그럼에도 피해자가 가해자로 지목한 사람과 같은 부서에 배치돼 결국 성폭력 대처를 안일하게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경찰은 휴대폰 디지털포렌식 등을 통해 세부 피해 사실이 밝혀질 경우 정식 수사를 진행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문제에 대해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성희롱 은폐는 조직사회의 문화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며 "공직은 진입이 어렵고 근속연수가 길고 이동범위가 넓지 않아 인맥과 평판이 업무와 승진에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는 재발 방지를 위한 실질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성폭력 피해 여성들을 변호하는 이은의 변호사는 "이러한 공직 사회 내부 위계 성폭력의 경우 과정과 절차가 더 중요하다"라면서 "사건이 발생 후 '보여주기식' 대처가 아닌 재발 방지를 위한 방안이 나와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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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적인 문제해결을 위한 방안으로는 △관련 기관 예산 투입, △TF팀 결성 등을 제안했다. 이 변호사는 "결국 공직 사회 내부의 예방 교육이나 후속 대책 등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한 것"이라면서 "구체적으로는 조직장(조직 최상단부)이 가해자가 됐을 경우 이를 감찰하고 처리할 수 있는 기관이 꼭 필요하다"라고 조언했다.


김수완 기자 suw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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