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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응급환자 맞나" 사설 구급차 불신, 생명 위협한다

최종수정 2020.07.06 10:12 기사입력 2020.07.06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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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급차 막은 택시기사 대해 엄벌 촉구
사설 구급차 불신 뿌리 깊어 "차 안에 사람 없는 줄"
구급업체 "응급환자도 자주 이용" 협조 당부

3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을 올린 청원인이 첨부한 블랙박스 영상. 청원인은 택시기사가 사고를 처리해야 한다며 구급차를 막아선 채 10분간 말다툼을 했다고 주장했다.  / 사진=유튜브 영상 캡처

3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을 올린 청원인이 첨부한 블랙박스 영상. 청원인은 택시기사가 사고를 처리해야 한다며 구급차를 막아선 채 10분간 말다툼을 했다고 주장했다. / 사진=유튜브 영상 캡처



[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임주형 인턴기자] 응급환자를 태운 사설 구급차를 택시기사가 막아선 사건이 사회적 공분을 사고 있는 가운데, 사설 구급차에 대한 운전자의 불신 때문에 이같은 일이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사설 구급업체 관계자는 응급환자도 자주 사설 구급차를 이용하는 만큼 시민들의 협조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지난 3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응급환자가 탄 구급차를 막아 세운 택시기사를 처벌해 달라'는 내용의 청원글이 올라오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이 글에 따르면 해당 사건은 지난달 8일 오후 3시15분께 서울 강동구 지하철 5호선 고덕역 인근 한 도로에서 발생했다. 당시 청원인은 폐암 4기 환자인 80대 노모와 함께 구급차에 탑승해 병원으로 이동 중이었으나, 구급차가 차선을 바꾸던 중 한 택시와 접촉사고를 냈다.


구급차 기사는 "응급환자가 뒤에 타고 있으니 우선 병원에 모셔다드리자"라고 했지만, 택시기사는 반말로 "사건 처리가 먼저다. 환자가 사망하면 내가 책임진다"라고 응수하며 구급차를 막아세웠다.


구급차와 택시의 실랑이는 10분간 이어졌고, 결국 청원인의 어머니는 119 신고로 도착한 다른 구급차에 옮겨져 한 대학병원에 이송됐다. 그러나 청원인 어머니는 끝내 의식을 찾지 못하고, 응급실 이송 뒤 5시간이 지난 그날 오후 9시께 숨졌다.

청원인은 "경찰 처벌을 기다리고 있지만 죄목은 업무 방해죄밖에 없다고 하니 (택시 기사는) 가벼운 처벌만 받고 풀려날 것으로 보인다"며 "그렇게 생각하니 정말 가슴이 무너질 것 같다"고 토로했다. 이 청원글은 6일 오전 7시 기준 54만건이 넘는 동의를 받으며 사회적 공분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민간 구급차. 사진은 기사 중 특정 표현과 관계 없음. / 사진=연합뉴스

민간 구급차. 사진은 기사 중 특정 표현과 관계 없음. / 사진=연합뉴스



사설 구급차에 대한 통행 방해로 환자 목숨이 위독해진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5년 1월17일에도 인천 남동구에서 뇌병변 장애를 앓는 3세 아동을 태운 구급차가 한 승용차를 들이받는 사고를 낸 바 있다. 당시 승용차 운전자는 구급차 기사가 위급상황임을 호소했음에도, 스마트폰으로 현장을 촬영하고 사건 처리를 요구하면서 구급차 출발을 10분께 지연시켰다.


이같은 문제의 원인은 사설 구급차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에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천 사고 당시 승용차 운전자 부인은 SBS와 인터뷰에서 "차 안에 진짜 사람이 타고 있을 줄 확신하지 못했다"며 "상황을 제대로 알았더라면 3분이라도 지체하지 않고 바로 보내드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동 구급차 사건의 경우에도 승용차 운전자는 "응급 환자도 없는데 일부러 사이렌을 켜고 빨리 가려 했던 거 아니냐", "진짜 응급환자 맞냐"며 사설 구급차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다.


응급환자를 태우지 않고도 사이렌을 울리는 이른바 '가짜 앰뷸런스' 문제는 이전부터 지속해서 제기됐다. 지난 2018년에는 울산 한 사설 구급업체가 연예인을 지방 행사장이나 공항에 이동시킬 목적으로 6회에 걸쳐 구급차를 운행한 혐의로 입건돼 논란이 불거졌다.


논란이 커진 가운데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같은 해 10월 경기도내 15개 사설 구급업체의 운행실태를 전수조사해 9개 업체를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적발했다고 밝혔다. 당시 이 지사는 "가끔이지만 가짜 구급차가 있다보니 사람들이 길을 안 비켜준다. 이런 불신을 깨야 한다"며 "사람들이 목숨 걸고 지켜야 할 규칙을 이용해서 푼돈 벌려고 하면 되겠나"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응급실 앞 구급차. 사진은 기사 중 특정 표현과 관계 없음. / 사진=연합뉴스

응급실 앞 구급차. 사진은 기사 중 특정 표현과 관계 없음. / 사진=연합뉴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설 구급차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선도 엇갈렸다.


직장인 A(29) 씨는 "일반 응급차도 엄연히 구급차인데 차별을 받는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생명을 살리는 데 귀천이 어디 있나"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경기 김포시에서 자가용으로 출근한다는 직장인 B(31) 씨는 "사실 119 구급차보다 사설 구급차가 신뢰가 덜 가는 것은 사실"이라며 "구급차가 사이렌을 울리면 일단 무조건 비켜줘야 하는 것은 맞다고 생각하지만, 업체들도 시민들에게 믿음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직장인 C(28) 씨는 "예전에 갑자기 가족이 아파져서 민간 구급차를 불러 응급실로 옮긴 기억이 있다"며 "우리 모두 살다 보면 한 번씩은 의존할 수 있는 게 사설 구급차인데, 존중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 한 사설 구급업체 관계자는 6일 아시아경제와 통화에서 "실제로 사설 구급차를 운영하다 보면 이번 사건과 같은 일이 많이 벌어진다"며 "정말로 환자를 이송하고 있는 건지 의심하는 경우가 많고, 차량을 무시하고 욕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긴급한 환자가 아닌 경우에는 그나마 낫지만 사설 구급업체도 응급 환자를 자주 이송하는 게 문제"라며 시민들의 협조를 호소했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임주형 인턴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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