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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독서]'노멀 피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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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독서]'노멀 피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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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멀 피플/샐리 루니 지음/김희용 옮김/아르테/1만4000원)

갈등 불안 계급주의 현대사회 녹여내

뻔한 10대 러브스토리 같아 보이지만

비틀어진 심연 토닥이며 구원찾는 모습

맨부커상 후보 오른 작품답게 섬세해

'노멀 피플' 동명 BBC드라마로 방영도

[아시아경제 박소연 기자] 사랑의 모습은 다양하다. 어떤 사랑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고, 어떤 사랑은 한없는 무기력에 빠지게 만든다. 그러나 완전한 사랑은 마음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선량함을 끌어내고 서로를 치유한다.


'노멀 피플'은 일그러진 환경에서 자란 두 남녀가 서로 '노멀 피플(보통 사람)'로 구원하고 발전시키는 과정을 그린다. 영화 '라라랜드(2016)' 속 연인들이 서로의 꿈을 응원하는 사이라면 '노멀 피플' 속 연인들은 서로의 비틀어진 심연을 토닥여 세상 속에 다시 설 수 있는 힘이 돼주는 사이다.

주인공 메리앤과 코넬은 동네친구다. 부유한 변호사 집안이지만 폭력 속에 자란 메리엔은 도도하고 까칠한 성격으로 친구들에게 따돌림당한다. 반면 코넬은 블루칼라 미혼모 가정에서 자랐지만 성적과 인물, 성격이 좋아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


코넬은 메리엔의 집에서 청소부로 일하는 엄마를 날마다 데리러 간다. 자주 마주치며 관계를 쌓아가던 어느날 메리엔이 코넬에게 "네가 좋다"고 고백하면서 소설은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플롯만 보면 흔한 10대의 러브스토리 같지만 읽다 보면 맨부커상 후보에 이름 올린 작품답게 인간의 내밀한 심리를 밀도 있게 그려낸다.


글쓴이 샐리 루니는 남녀의 사랑과 성장이라는 익숙한 이야기 속에 밀레니얼 세대가 맞닥뜨린 내면의 갈등과 불안, 그리고 계급주의적인 현대 사회의 모습을 섬세하고 정확한 묘사로 담아냈다.

남녀 주인공은 극과 극의 상황에 놓여 있지만 매우 절실하게 서로를 이해한다. '썸'에서 시작된 둘의 관계는 친구들이 모르는 '오후의 밀회'로 이어진다. 두 사람은 가까운 사이가 된다. 하지만 코넬은 메리앤을 싫어하는 친구들이 두렵다. 그래서 관계를 숨기려 한다. 심지어 졸업 무도회 파트너로 메리앤 대신 다른 여학생을 선택한다. 충격에다 상처까지 입은 메리앤은 학교를 자퇴하고 사라진다.


이듬해 대학생이 된 두 사람은 파티에서 조우한다. 하지만 상황은 고등학교 때와 많이 달라졌다. 메리앤은 부유한 친구들과 어울리며 파티를 열 만큼 인기가 많다. 가난한 코넬은 친구도 없는 아웃사이더다.


둘은 친구로 다시 조심스럽게 관계를 시작한다. 그러나 함께 있을 때면 다른 사람이 결코 주지 못하는 충만함과 편안함, 완전한 이해를 누린다는 걸 깨닫는다. 둘은 다시 사랑하며 서로 삶을 구원할 운명이라 여긴다.


'노멀 피플'에서는 졸업 무도회, 대학 입학 등으로 이어지는 과정과 사회적 관계 속에 변하는 이들의 모습, 역학관계, 내밀한 첫사랑이 남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듯 매혹적으로 그려진다. 읽다 보면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1919~2010), 다자이 오사무(1909~1948) 같은 예민하고 상처 입은 영혼들이 내뱉는 언어를 그리는 천재 작가가 떠오르기도 한다.


코넬과 메리앤은 소울메이트에 가깝다. 하지만 처음에는 고등학교의 '아웃사이더' 메리앤의 사회적 지위, 대학에 진학해선 여실하게 드러나는 경제적 조건으로 둘은 가깝고도 먼 사이가 된다. 다만 둘이 있을 때면 세상 그 누구보다 서로를 이해한다. 하지만 사회적 관계에서는 당당하게 드러내지 못하고 어설프게 오해하고 망가진다. 각자의 콤플렉스와 서투름 속에서 서로에게 상처를 남기고 멀어지곤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결국 강력한 자석처럼 서로를 끌어당기는 이들. 서로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지만 최후의 복병은 폭력적인 가정에서 자란 메리앤의 내면에 곪아버린 상처다.


10대 시절 누구보다 성숙하게 행동했던 메리앤은 어른이 된 뒤 되레 상처에 짓눌린다. 성장기에 부모와 오빠로부터 받은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끝없이 자기학대 상황으로 몰아넣는다. 코넬은 그런 메리앤에게 망가진 존재가 아니라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소중한 존재임을 알려주는 좋은 친구이자 연인으로 남는다.


코넬 역시 메리앤의 도움으로 삶의 새로운 장을 열게 된다. 코넬은 원래 안정적인 삶을 위해 변호사가 될 생각이었다. 그는 자기가 틈만 나면 소설을 읽는다는 것, 그 속에 푹 빠져 즐거움을 느낀다는 것도 깨닫지 못했다. 그러나 메리앤은 코넬이 경제적 불안 때문에 숨겨왔던 꿈과 재능을 알아보고 지지한다. 그의 문학 세계를 온전히 이해하는 조력자가 돼준다.


평범함 속에 정성을 다하는 사랑이 완전한 사랑이며 소중한 사랑은 운명처럼 이어진다는 메시지가 진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를 진리로 받아들이게 하는 건 작가의 필력이다.


1991년 아일랜드 태생의 신예 소설가 루니는 '노멀 피플'로 '스냅챗 세대의 샐린저', '더블린(아일랜드의 항구 도시)의 프랑수아즈 사강'이라는 극찬을 받았다. '노멀 피플'은 출간 이후 미국 주요 언론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는가 하면 세계 각국 언어로 번역돼 100만부 넘게 팔렸다. 소설은 올해 BBC 드라마로 만들어져 방영 중이다. 루니는 2017년 '친구들과의 대화'로 데뷔와 동시에 평단ㆍ출판계의 주목을 받았다.




박소연 기자 mus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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