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재정통합 기대감에 美 초대 재무장관 언급
독일 재무장관 "해밀턴 순간이 왔다"

[이미지출처=EPA연합뉴스]

[이미지출처=EPA연합뉴스]

AD
원본보기 아이콘


[아시아경제 정현진 기자] '미국 건국의 아버지' 가운데 한명이자 초대 재무부 장관인 알렉산더 해밀턴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경제적 분열 위기에 놓인 유럽에서 주목받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18세기 인물, 그것도 바다 건너 미국의 위인을 뜬금없이 유럽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 美, 연방정부로 옮긴 부채…EU도 같은 수순? = 배경은 지난달 19일 두 정상이 5000억유로(약 680조3000억원) 규모의 코로나19 회복기금을 만들자고 합의한 데서 출발한다. 대출이 아닌 보조금 형식을 받아들이면서 유럽연합(EU) 차원의 '재정 공동체'가 일시적으로 생길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 것이다. 올라프 숄츠 독일 재무부 장관은 두 정상의 발표 후 "유럽에 해밀턴의 순간이 왔다"고 언급했다. 이후 같은 달 27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5000억유로의 보조금을 포함한 7500억유로 규모의 기금 구성을 발표했다.

해밀턴은 1790년 미국 독립전쟁에서 많은 빚을 낸 주(州)정부의 부채를 연방정부 차원으로 이전해 다 같이 책임지게끔 했다. 독립전쟁 이후 독립적으로 재정을 운영하던 미국의 주정부들은 부채로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자 해밀턴은 전쟁에서 운명 공동체였다는 점을 이유로 상대적으로 재정 상황이 양호하던 버지니아 등 남부 지역 주들을 설득했다. 미 연방정부는 그 대가로 미국의 수도를 임시 수도이던 뉴욕 대신 남부에 가까운 워싱턴DC로 정했다. 이를 계기로 현재 미국은 통화ㆍ재정 정책을 주가 아닌 연방 차원에서 운영한다.


미국의 당시 상황을 지금의 유럽에 적용하면 EU가 연방정부, EU 회원국들이 주정부가 되는 셈이다. 특히 EU가 회원국에 대출을 해주면 자금을 빌린 국가는 상환해야 한다. 하지만 보조금을 지급하고 그 재원을 EU 회원국이 낸 재정으로 감당하게 된다면 결국 자국민에게서 세금을 걷어 EU에 회비를 납부한 부유한 국가들이 우회적으로 빈곤한 국가의 부족한 재정을 지원하게 된다.

'경제 분열' 유럽…해결사로 뜨는 18세기 미국인 '해밀턴' 원본보기 아이콘


현재 유럽의 통화 정책은 유럽중앙은행(ECB)이 유로라는 통화를 통해 결정하는 반면 재정 정책은 각국 정부에서 내놓고 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각국이 경기 부양책을 내놓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EU에서는 독일과 프랑스의 보조금 지원 방안이 나온 후 '유럽합중국(United States of Europe)'이라는 표현이 성급하게 등장하기도 했다. EU 차원의 보조금 지급이 미국처럼 재정 통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기대감이 반영된 것이다.


◆ EU 내 갈등 여전…"해밀턴은 잊어라" 지적도 = 하지만 일각에서는 현재 유럽 상황이 해밀턴의 사례와는 다르다는 평가도 있다. 해밀턴은 당시 주정부 부채를 연방정부로 가져오면서 동시에 수입 관세로 부채를 상환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연방정부의 재정 상태를 강화할 방안을 함께 내놓은 것이다. 또 일시적으로 보조금을 지급하는 EU 차원의 대응책은 완전히 재정을 통합한 미국의 사정과는 분명 다른 측면도 있다.


무엇보다 현실적으로 회원국 간 합의가 쉽지 않다. 네덜란드, 덴마크, 오스트리아 등 재정 건전성이 비교적 좋은 북유럽 국가들이 거세게 반대하고 있다. 이미 2012년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재정 위기 당시 EU 회원국들이 공동채권 발행을 검토하면서 해밀턴이 유럽에서 주목받은 바 있다. 하지만 결국 일부 국가들이 거세게 반대하면서 합의에 실패했다. 브렉시트(Brexitㆍ영국의 EU 탈퇴) 등으로 EU의 입지가 가뜩이나 흔들리는 상황에서 자칫 이번 논의에서 균열이 커지면 오히려 EU의 존폐 자체까지 고민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레버 잭슨 조지워싱턴대 교수는 최근 포린폴리시(FP)에 '해밀턴은 잊어라. 이는 유럽의 칼론 모멘트다'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게재했다. 그는 1787년 프랑스 파리에서 재정 적자 문제를 해결하려 한 샤를 알렉상드르 드 칼론 전 프랑스 재무부 장관의 급진적인 정부 부채 해결 노력이 귀족들의 반발을 일으켰고 프랑스혁명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EU의 회복기금이 숄츠 장관이 언급한 대로 "더 완전한 연합"이 될 수도 있지만 "'내일의 일은 내일의 일' 식으로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당장 해결하지 말고 신중히 상황을 지켜보자는 뜻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사설에서 "EU가 위기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 긴밀한 재정ㆍ정치적 통합을 이뤄야 한다"면서도 "누군가는 이를 유권자들에게 말하고 찬성을 얻어낼 수 있도록 설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밀턴에 맞서 주정부의 독립성을 강조한 제임스 매디슨이 유럽에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AD

EU 회원국 정상들은 이달 19일 화상 콘퍼런스를 통해 처음으로 회복기금에 대한 의견을 공유할 예정이다. 다만 구체적인 논의는 다음 달 말 대면으로 진행될 특별 정상회의에서 적극적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EU 관계자는 한 외신에 "8월 여름 휴회 전 합의를 이뤄내자는 목소리가 크다"고 말했다.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