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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윤미향과 조국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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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미향씨는 자신이 왜 국회의원직에서 사퇴해야 하는지 납득할 수 없을 것이다. 해체 요구를 받는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소속 운동가들도 그럴 것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도 그랬다.


한동안 잠적했던 윤씨는 국회의원 신분을 획득하자마자 그간 제기된 의혹을 조목조목 반박하고 있다. 어떤 것은 사실이 아닐 수 있으며 어떤 것은 고의적이지 않더라도 불법행위였을 것이다. 검찰 조사에서 유무죄가 가려질 것이고 합당한 벌을 받으면 된다. 그 전에는 무죄 추정의 원칙을 적용받아야 한다. 이것이 윤씨의 생각일 것이다. 조 전 장관의 생각도 같았을 것이다.

윤씨가 국회에서 어떤 일을 하려는지 직접 들어보진 못했지만 아마도 입법을 통한 위안부 운동의 체계화일 것이다. 30년 넘게 이 운동에 매진하면서 소극적 태도로 일관하는 한국 정부와 국회에 아쉬움이 컸다고 한다. 그래서 그 원대한 과업을 완수하기 위해 국회의원이 되기로 마음먹었을 것이다. 검찰개혁을 위해 법무부 장관이 되려 했던 조 전 장관도 그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필자는 조 전 장관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조 전 장관이 검찰개혁의 적임자라는 대통령의 의중을 존중하더라도, 청문회와 취임 전후로 벌어진 사회적 논쟁은 정권에 커다란 부담으로 작용했다. 그렇게 온갖 논란을 정면으로 승부하던 그는 법무부 장관 취임 직후 몇 가지 개혁 조치를 시행하고 곧바로 사퇴를 결정했다. 제기된 의혹을 납득할 수 없다며, 유무죄가 가려질 때까지 사퇴할 이유가 없다고 버텼다면, 현재 그의 후임자가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검찰개혁을 속도감 있게 추진할 동력을 이 정권은 확보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시민사회는 위안부 운동의 새 출발을 요구하고 있다. 시민이 기대고 의지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로서 시민사회단체의 환골탈태는 시대적 과제로 보인다. 일찌감치 자문(自問)했어야 할 많은 질문들이 이제야 그 답을 구하고 있음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수요집회에 참석한 학생들은 할머니의 편안한 여생을 위해 후원금을 낸 것일까 혹은 전시 성폭력 문제의 국제인식 확산을 바라는 마음에서였을까. 두 가치는 어떻게 균형을 맞추고 각각 어떤 주체가 실현할 과제인가. 그 과정에서 정의연 같은 기관의 적절한 역할은 무엇이며 정부 책임은 어디까지인가. 사정과 요구가 다른 피해자들을 한 목소리로 묶으려는 시도는 대의를 위해 적절한가 아닌가. 자부심을 넘어 우월감이나 피해의식마저 느껴지는 시민단체 소속 운동가들의 비상식적 언행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그리고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이 문제에 대처할 것인가. 윤씨와 정의연은, 본인들도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우리 사회의 중차대한 변화를 결정할 당사자가 돼버린 현실을 인지하고 있을까.

필자는 사퇴 혹은 해체할 의사가 전혀 없어 보이는 윤씨와 정의연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들이 위안부 운동에 생을 바쳐 매진해왔다 해서, 그 과정이 외롭고 험난했다 해서, 위안부 운동의 방향을 규정할 권리가 그들에게만 부여되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도 계속될 위안부 운동의 궤적에서 그들이 어떤 자리에 위치할 것이며, 그들의 역사적 소임은 어디까지인지 역시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조 전 장관이 검찰개혁의 상징인 것처럼, 윤씨와 정의연은 위안부 운동의 꽃이며 전부였다. 위안부 운동은 이제 다음 단계로 진화하기 위한 고통의 결정을 윤미향과 정의연에게 묻고 있다. 꽃이 지는 것은 얄궂은 바람 탓이 아니라 열매를 맺기 위한 시간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가야 할 때를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이 아름다운 것도 낙화(落花)의 아픔을 순리로 받아들여서일 것이다. 최소한 조 전 장관은 그랬다.

사회부장 신범수

사회부장 신범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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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범수 기자 answ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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