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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이지 않는 직장 내 성범죄, 이대로 괜찮나

최종수정 2020.06.02 05:50 기사입력 2020.06.02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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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롱 사건 대부분 직장 내 권력관계서 발생
피해자 2차 피해받는 구조적 문제
전문가 "수사기관이 피해자 괴롭히는 2차 가해 도구되지 않아야"

지난해 인권위의 '성희롱 시정 권고 사례집'에 따르면 시정권고 사례로 공개된 37건 가운데 31건이 학교·직장·병원 등의 직장상사가 행한 신체·언어 성희롱으로 조사됐다./사진=연합뉴스

지난해 인권위의 '성희롱 시정 권고 사례집'에 따르면 시정권고 사례로 공개된 37건 가운데 31건이 학교·직장·병원 등의 직장상사가 행한 신체·언어 성희롱으로 조사됐다./사진=연합뉴스



[아시아경제 김수완 기자] 한 중소기업 과장으로 근무하던 40대 남성이 신입사원을 성추행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으나, 1·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던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성들의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해당 남성은 성적 농담을 반복하는 등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을 지속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여성들은 "재판부가 2차 가해를 한 것이 아니냐"라면서 목소리를 높이는가 하면, 재판부가 가해자에게 관대한 처분을 내린다고 비판했다. 전문가는 수사기관이 피해자를 괴롭히는 2차 가해의 도구가 되지 않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과장 A 씨는 지난 2016년 10월부터 같은 해 11월까지 신입사원 B 씨의 머리카락이나 어깨를 만지는 등 성추행을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B 씨가 거부감을 표시했음에도 A 씨 행위는 지속됐으며, 컴퓨터로 음란물을 보여주거나 성적인 농담을 일삼은 것으로 조사됐다.


1심 재판부는 "A 씨는 B 씨보다 2개월 일찍 입사한 정도여서 업무를 지시하는 위치이기는 했으나 업무 수행 등에 있어 B 씨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의 정도는 큰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라며 "신체 접촉 정도 등에 비춰 B 씨의 성적 자유의사가 제압된 상태에서 성적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가 이뤄졌다고 보기 힘들다"고 무죄를 선고했다.

2심도 "B 씨가 재직한 회사는 젊은 직원들로 구성돼 직장 분위기 측면에서 위계질서가 강한 조직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라면서 "B 씨는 A 씨를 상대로 장난을 치기도 했고, 신체 접촉의 정도 역시 머리카락을 성적인 의도로 쓸어내리거나 하는 것이 아니다"며 원심을 유지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A 씨는 B 씨에 대해 보호·감독을 행사하는 관계로서 위력을 행사한 것으로 인정된다"고 봤으며 "원심은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며 파기 환송했다.


이 가운데 국가위원회가 시정권고한 성희롱 사건의 대부분은 직장 내 권력관계에서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인권위의 '성희롱 시정 권고 사례집'에 따르면 시정권고 사례로 공개된 37건 가운데 31건이 학교·직장·병원 등의 직장상사가 행한 신체·언어 성희롱으로 조사됐다.


이 중 직접고용 상하관계에서 발생한 성희롱이 137건(65.6%)으로 가장 많았다. 특히 성희롱 행위자 63.6%가 대표자·고위관리자·중간관리자로 가장 많았고, 피해자의 72.4%는 평직원으로 집계됐다.


문제는 직장 내에서 발생한 성범죄의 경우 신고 후 보호 장치가 없어 신고율이 낮다는 점이다.


여성가족부가 지난 2018년 6개월여간 직장인들과 성희롱 방지업무 담당자 등 총 16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성희롱 피해자의 81.6%가 '참고 넘어갔다'고 응답했다. 이처럼 피해 사실을 신고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실제 피해사례는 통계보다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여성가족부가 지난 2018년 6개월여간 직장인들과 성희롱 방지업무 담당자 등 총 16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성희롱 피해자의 81.6%가 '참고 넘어갔다'고 응답했다./사진=아시아경제DB

여성가족부가 지난 2018년 6개월여간 직장인들과 성희롱 방지업무 담당자 등 총 16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성희롱 피해자의 81.6%가 '참고 넘어갔다'고 응답했다./사진=아시아경제DB



일각에서는 신고 후 2차 피해에 대한 방지책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위력에 의한 성범죄에서는 피해자에게 인사상 불이익, 정신적 트라우마 등 피해가 크다는 우려에서다.


한국여성변호사회가 지난 2018년 실시한 '전문직 여성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실태조사' 결과에서 응답자의 65.7%(283명)는 '우울증, 자책감, 트라우마 등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고 응답했다. 이 중 4.9%(21명)는 '이사, 퇴사, 이직 등 생활상 불이익'을 꼽았다.


또한, 서울여성노동자회가 지난 2013년~2016년간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10명 중 7명이 자진해 회사를 떠난 것으로 집계됐다.


전문가는 직장 내 위력에 의한 성추행에 대해 실형을 선고한 법원의 판결에 대해 굉장히 유의미한 판결이라고 제언했다.


이은의 변호사는 아시아경제와 통화에서 "민감한 부위가 아니더라도 전체적인 맥락을 봤을 때 추행으로 판단한 것"이라며 "신체적 접촉이 없었다 하더라도 법원이 당사자의 입장에서 내린 판결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이러한 부분들이 성범죄 사건에서 굉장히 중요한데 유의 깊게 봐야 할 점은 이런 부분들을 법원에서 중요하게 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라고 강조했다.


원심을 파기한 대법원 판단에 대해서는 "이번 판결은 하급심에서 문제가 있더라도 상급심 판결을 통해 유의미한 결과를 낸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대법원 판결로 성범죄에 대한 하나의 지침이 생긴 것이라 볼 수 있다. 이전에는 이런 사건이 기소가 안 되거나 무죄판결이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이로 인해 피해자들의 삶은 고통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직장 내 성범죄 등에서 (가해자가) 무죄나 불기소된 이후 직장으로 돌아가는 피해자들에 대해 수사기관이나 법원이 다시 되돌아봐야 한다고 본다"며 "수사기관이 피해자를 괴롭히는 2차 가해의 도구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하급심뿐만 아니라 검찰도 느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김수완 기자 suw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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