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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권보다 생명권” 수술거부 부모에 소송 건 서울대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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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3세 희귀질환 아이 수술 거부한 父 진료방해금지 가처분 인용
'다른 구제절차 존재' 이유로 가처분 신청 ‘각하’한 1심 뒤집어

출처=서울대병원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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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최석진 기자] 수술을 받지 않으면 생명에 위험이 있는 3세 아이의 부모가 '경제적으로 어렵다'며 수술을 거부할 경우 의료진은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까. 통상 '차후에 문제 삼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게 하고 치료를 하지 않는 게 관례다.


나중에 수술비 등을 받을 수 없다는 점도 병원 입장에선 치료를 꺼리게 만든다. 그런데 국립 서울대병원 의료진의 판단은 달랐다. '치료를 방해하지 않게 해달라'며 법원에 소송을 냈고 승소을 거둬 곧 수술을 할 수 있게 됐다. 법원은 '생명권이 친권보다 상위개념'이라며 병원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 3월7일 폐렴을 앓던 3세 A군은 증세가 악화돼 응급상태에서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졌다. A군은 지적장애와 간질발작 등 신경학적 이상을 보이는 'CASK 연관 간질발작 뇌병증(이하 CASK)'이라는 희귀질환을 앓고 있었다.


문제는 의료진이 A군 목에 있는 기관튜브를 빼내려 시도하면서 생겼다. A군이 분비물 배출과 자가호흡에 어려움이 발생해 두 차례 걸친 제거 시도에 실패한 것이다. A군은 이후 2달여 간 기관을 삽관한 채 지내야 했다.


법원 등에 따르면 소아에 대한 기관 삽관은 튜브로 인한 기관지염, 저산소성 뇌손상 등으로 생명 단축 위험이 있어 3주 안에 기관절개술을 실시해야 한다. 게다가 CASK를 앓고 있던 A군의 경우 분비물을 스스로 제거할 능력이 없어 기관절개술을 하지 않으면 목숨이 위태로운 상태였다.

그러나 A군의 아버지 B씨가 기관절개술을 받지 못하겠다고 버티면서 갈등이 시작됐다. 주말에도 거의 쉬지 못하고 일을 해온 B씨는 이혼 후 본인이 친권을 갖게 되면 돌볼 사람이 없어 시설에 보낼 생각도 하고 있다고 했다. 설사 본인이 키운다 해도 간병인을 고용해야 할텐데 수술 후 추가되는 간병인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B씨와 이혼소송 중인 A군의 어머니 역시 친권을 B씨에게 넘길 예정이라는 이유로 친권을 행사하지 않겠다며 수술에 동의하지 않았다.


이에 서울대병원은 수술을 포기하지 않고 법원의 판단을 받기로 했다. 통상 병원들이 위험이 따르는 수술에 당사자나 법정대리인의 동의가 없을 경우 병원의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받고 수술을 피하는 관례에 비춰 이례적인 조치였다.


그러나 소송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1심에서 병원의 가처분신청이 각하된 것이다. 다른 구제절차가 마련돼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친권자가 정당한 이유 없이 동의하지 않아 자녀의 생명, 신체 또는 재산에 손해가 발생할 위험이 있을 때 검사나 지방자치단체장이 가정법원에 친권자의 동의에 갈음하는 재판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한 민법 제922조의 2에 따라 우선 검사나 서울시장을 설득해, 가정법원에 B씨의 동의에 갈음하는 재판을 청구하도록 요청한 뒤 가정법원의 판결을 받아 수술을 하라는 취지였다.


병원 측은 항고를 결정했고 항고 사건을 심리한 서울고등법원 제25-1민사부(부장판사 박형남ㆍ윤준ㆍ김용석)의 판단은 달랐다.


우선 재판부는 병원 측의 가처분 신청이 1심 재판부가 밝힌 것처럼 ‘친권자의 동의를 갈음하는 재판’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병원은 친권자의 동의가 없어도 환자 A군의 생명권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진료의무를 이행하겠다는 것이고, 그 치료에 반대하고 있는 친권자의 방해를 배제해달라는 것이어서 민법 제922조의 2가 규정한 것과는 취지가 다르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물론 검사나 지자체장으로 하여금 친권자의 동의에 갈음하는 재판을 청구하게 할 수도 있겠지만 의료기관과 검사 등의 판단이 항상 같을 수 없을 뿐 아니라 그 절차에 상당한 기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는 점 등을 감안하면 의료기관 스스로 친권자의 동의 없는 의료행위라는 위험을 부담하면서 치료에 나아가는 것을 막을 필요는 없다고 사료된다”고 이유를 밝혔다.


또 재판부는 “의사능력이나 행위능력이 없는 자녀에 대한 긴급한 의료행위가 이뤄져야 함에도 친권자가 합리적 이유 없이 친권을 남용해 이를 거부한다면 그 거부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생명권 존중 차원에서 필수적인 의료행위는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며 “이는 인간의 생명권이 부모의 친권보다 상위개념임에서 오는 당연한 귀결”이라고 강조했다.


서울대병원 측 소송을 대리한 법률사무소 해울의 신현호 변호사는 “1심이 가족법상 친권자 동의 절차가 있다는 이유로 가처분 신청을 각하한 것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고려하지 않은 접근방식”이라며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닌 것처럼 어느 절차든 신속하게 생명을 구할 수 있는 방법에 따라 실질적인 구제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법원의 가처분 인용 결정에 따라 서울대병원은 2일 A군에 대한 기관절개 수술을 실시할 예정이다.




최석진 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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