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티나무 잎사귀 속으로 노오랗게 가을이 밀려와 우리 집 마당은 옆구리가 화안합니다

그 환함 속으로 밀려왔다 또 밀려 나가는 이 가을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찬 한 장의 음악입니다


누가 고독을 발명했습니까 지금 보이는 것들이 다 음악입니다

나는 지금 느티나무 잎사귀가 되어 고독처럼 알뜰한 음악을 연주합니다

누가 저녁을 발명했습니까 누가 귀뚜라미 울음소리를

사다리 삼아서 저 밤하늘에 있는 초저녁 별들을 발명했습니까


그대를 꿈꾸어도 그대에게 가닿을 수 없는 마음이 여러 곡의 음악을 만들어 내는 저녁입니다

음악이 있어 그대는 행복합니까 세상의 아주 사소한 움직임도 음악이 되는 저녁, 나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누워서 그대를 발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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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 詩] 그대의 발명/박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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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을 생각합니다. 당신의 얼굴을 생각합니다. 당신의 눈과 코, 그리고 입과 볼을 생각합니다. 낯설지만 어디선가 본 듯합니다. 그러나 저는 당신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습니다. 생전 당신을 만난 적이 없는 것처럼 이번 생이 끝날 때까지 당신을 만날 수 없을 겁니다. 괜히 서럽습니다. 괜히 슬픕니다. 그러다 점점 아리기까지 합니다. 구체적으로 쓰리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먼 데를 봅니다. 가능한 한 고개를 쭈욱 빼서 한참 먼 데를 봅니다. 먼 데를 보다가 그만 당신 얼굴을 까먹었습니다. 아까까지만 해도 선명했었는데 가물가물하기만 합니다. 애써 당신 얼굴을 떠올려 보지만 아무래도 그건 당신 얼굴이 아닌 것만 같습니다. 당신 얼굴을 잊다니! 당신이 저를 떠났다는 게 정말인 것만 같습니다. 그전에 진짜로 당신이 제 곁에 있었던 것만 같습니다. 눈물이 나려 합니다. 아니 어느새 눈물이 흐르고 있습니다. 저는 이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이 저녁, 당신을 생각하고 또 자꾸 생각하는 일, 그 일 말고는 그 무엇도 할 수가 없습니다. 당신은 이미 제게 신입니다. 나뭇잎 위로 나뭇잎 그림자들이 켜켜이 내려앉습니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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