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진 뒤 브장송에 도착했다. 비가 내렸다. 크리스마스 때 설치했을 장식 조명이 어두운 골목 곳곳을 비추고 있었다. 어둠 속 어디선가 물소리가 들렸다. 저녁을 먹고 호텔 로비를 나섰을 때는 다행히 비가 그쳤다. 2003년이 막 시작되고 있었다. 나는 그때 신문기자로서 회사의 지원을 받아 독일 쾰른에서 체육을 공부했다. 방학이 되자 아내와 딸이 날아왔다. 나는 여행을 함께 하기로 결심했다. 파리를 거쳐 스위스와 오스트리아를 누비는 자동차 여행이 그렇게 시작됐다. 브장송의 축축한 포도(鋪道)를 걸을 때, 나에게는 아내와 딸에게 해줄 말이 있었다. 모름지기 여행에서 가이드를 하려면 미리 공부를 해야 한다.
브장송은 프랑스 동부 부르고뉴프랑슈콩테 지방의 두(Doubs)주에 속한다. 풍부한 역사문화유산과 독특한 건축 덕분에 1986년부터 '예술과 역사의 도시'로 불린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갈리아 전기'에서 원정 첫해의 겨울 숙영지를 베손티오(Vesontio)에 세웠다고 기록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V가 B로 바뀌어서 브장송이 됐다. 신성로마제국과 부르고뉴공국, 합스부르크 왕가, 스페인의 지배를 받다가 1674년 프랑스군이 점령해 오늘에 이어진다. 이 일을 기록한 아담 묄렌의 유화와 장 마르탱의 태피스트리가 전한다.
브장송은 두 강이 휘감고 지나간 환곡내지(環曲內地·강의 줄기가 둥글게 고리 모양을 만들며 흘러 생긴 지형에서 그 고리에 감싸인 땅)에 단정하게 자리를 잡았다. 우리나라의 영월 청령포나 안동 하회마을과 흡사하다. 옛 시가지는 정말 아름답다. 남동쪽에 생테티엔산이 있어 도시를 굽어본다. 여기에 도시를 상징하는 건축물, '브장송 요새'가 우뚝 섰다. 1655년 5월15일에 생 레제 보방에서 태어난 세바스티앵 보방이 루이 14세의 명을 받아 이 요새를 세웠다. 1668년에 착공해 1683년에 완공했다. 보방이 1667년부터 1707년까지 세운 300여개의 도시 요새 가운데 하나다. 2008년에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보방은 축성과 공성(攻城)에 모두 능했다고 하니 창과 방패를 양손에 쥔 사나이였다. 툴롱 군항을 건설하고 운하를 파기도 했다. 전쟁사를 통틀어 처음으로 참호를 활용한 군인이다. 1667년 플랑드르 전쟁에 종군했고 1668년 릴의 성채 사령관, 1703년에는 육군 원수가 됐다. 1707년, 보방은 루이 14세에게 '왕령 십일조 세안'을 제시했다. 면제되는 계층 없이 수입의 5~10%를 세금으로 부과하자는 내용이다. 그는 '노동과 부역 그리고 세금을 지불함으로써 왕국 전체를 부유하게 하는 하층민들'의 처지를 살피라고 진언했다. 보방의 주장은 왕의 진노를 샀다. 결국 원수의 신분으로 감옥에 갇혔다.
보방은 같은 해 3월30일 파리에서 죽었다. 바조슈에 묻혔다가 앵발리드에 이장됐다. 그가 고안한 별 모양의 요새 설계 이념은 후세로 이어져 군사건축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미합중국 국방부 건물인 '펜타곤'도 오각형 구조다. 보방이 프랑스 북쪽 도시 릴에 세운 요새를 떠올리게 한다. 보방은 릴에 지은 요새가 마음에 들었는지 이곳에 '요새의 여왕'이라는 이름을 지어 붙였다. 브장송에 다녀온 지 17년. 우리 집의 여왕에게 옛 기억을 물었으나 기억하지 못했다. 옛 도심을 장식한 루미나리에 불빛만 떠오른다고 했다. 딸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라며 웃었다. 역시 가이드가 가장 많이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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