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2위 항공사 법정관리…코로나19에 흔들린 '버진왕국'
[아시아경제 정현진 기자] 영국의 괴짜 최고경영자(CEO) 리처드 브랜슨 회장이 세운 '버진왕국'이 무너지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따른 봉쇄 조치로 항공업계가 지금난을 겪으면서 호주 2위 항공사인 버진오스트레일리아가 법정관리 절차에 돌입한 것이다. 버진오스트레일리아를 살리기 위해 브랜슨 회장은 캐리비안해에 있는 개인 소유 섬까지 담보로 내놓겠다고 했으나 결국 코로나19를 피하지 못했다.
21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버진오스트레일리아홀딩스는 이날 성명을 통해 자본 구성을 재편하기 위해 법정관리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회계법인인 딜로이트 직원 4명이 관리인으로 업무를 맡게 되며 이를 통해 자본을 투입할 새로운 투자자를 물색하고 대출 구조조정 등을 진행할 예정이다. 딜로이트 측은 "자본 재구성과 회사 미래에 관심이 있는 참여자가 있는지를 확인해보기 시작했다"면서 "이미 관심을 보이는 쪽이 있다"고 밝혔다. 버진오스트레일리아는 "이를 통해 자본을 재구성해 더 강한 재정 상태를 만들어 줄 것"이라면서 "예정된 비행 일정은 소화할 것"고 밝혔다.
하지만 일간 가디언은 버진오스트레일리아의 법정관리를 2002년 앤셋항공이 파산한 이후 가장 큰 규모의 항공사 추락 사례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버진오스트레일리아는 브랜슨 회장이 관심을 갖는 계열사 중 하나였다. 2000년 8월 버진블루라는 이름의 저가항공사로 사업을 시작한 버진오스트레일리아는 빠르게 성장해 2012년 지금의 사명으로 바꾸고 포괄적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호주의 2위 항공사로 거듭났다. 이후 매출은 꾸준히 늘었다.
하지만 호주 항공사들 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비용이 크게 늘어 7년간 적자를 기록해왔다. 특히 코로나19 확산으로 이동이 대거 중단되면서 모든 서비스는 중단됐고 현금 확보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50억호주달러(약 3조9000억원ㆍ지난해 말 기준)의 부채가 압박으로 작용했다. 회사는 호주 정부에 14억호주달러가량의 대출 지원을 요청했지만 결국 지원을 받지 못했다.
버진오스트레일리아의 몰락은 브랜슨 회장의 명예에도 먹칠을 하고 말았다. 브랜슨 회장은 1970년대 런던에서 우편 음반판매회사인 '버진레코드'를 설립한 이후 이 회사를 항공ㆍ미디어ㆍ우주관광 사업으로 영역을 넓힌 거대그룹으로 키웠다. 주가가 치솟으면서 2010년 포브스가 뽑은 억만장자 212위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현재는 565위로 떨어졌다.
그는 버진오스트레일리아를 되찾겠다는 야심을 버리지 않았다. 평소 호주 최대 항공사인 콴타스를 견제할 수 있는 존재라고 강조해왔다. 이날도 버진오스트레일리아를 살리기 위해 개인이 보유하고 있던 캐리비안해 네커섬을 담보로 가능한 한 많은 자금을 확보해 투입할 것이라면서 "이 회사가 사라지면 콴타스는 호주 하늘을 독점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브랜슨 회장은 회사정리 발표 직후 버진오스트레일리아 팀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나는 우리가 함께 이뤄 온 모든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면서 "20년 전 우리는 호주 하늘에 경쟁이 필요하다고 보고 이를 거쳐 왔고 항공운임을 낮추고 싶었으며 소비자들의 선택지를 늘리고 수천 개의 일자리를 만들고 싶었다. 포기하지 말라. 모두에게 버진오스트레일리아가 돌아올 것이라 말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국가의 정부들이 항공업계를 지원했지만 호주 정부는 그렇지 않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호주 정부가 항공업계 지원에 나서게 될지도 주목된다. 버진오스트레일리아는 현재 정규직과 계약직을 합해 1만5000명을 고용하고 있다. 게다가 1위 항공사인 콴타스를 견제할 수 있는 항공사가 버진오스트레일리아뿐이어서 독점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면 지원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마티아스 콜만 호주 재무부 장관은 이날 한 라디오 방송에 나와 "정부가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게 된다면 이는 민간과 시장이 중심이 된 지속가능한 답안을 찾아내기 힘들어질 것"이라면서도 "미래에 두 항공사가 지속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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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진오스트레일리아는 주요 주주가 외국 항공사인 독특한 지분 구조를 띠고 있다. 싱가포르항공, 아랍에미리트(UAE)의 에티하드 항공, 중국 하이난항공그룹, 중국 난샨그룹이 각각 2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호주 정부는 이들의 재정 지원이 우선돼야 한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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