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고형광 기자, 박지환 기자] 정부가 10조7000억원 규모의 증권시장안정펀드(증안펀드)를 편성하기로 하면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주식시장이 안정을 되찾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증시 전문가들은 이번 자금 투입 규모가 코스피 시가총액(약 1000조원)의 1% 남짓인 점을 감안하면 실제 수급에 미치는 영향력은 크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정부의 시장 안정화 의지를 보여준 만큼 투자심리 개선 효과는 기대해 볼만하다고 평가했다.
2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주식시장 수요 기반 확충을 위해 전 금융권과 증권유관기관들이 참여하는 10조7000억원 규모 증시안정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 주식시장 전반의 안정을 도모할 수 있도록 개별 주식이 아닌 시장 전체를 대표하는 지수상품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내달부터 본격적으로 운용된다.
10조원 넘는 자금이 차례로 증시에 투입되면 하락장에서도 일정 부분 안전판 역할을 해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전문가들은 과거 사례에 비춰볼때 규모면에서는 압도적으로 크지만 실제 증시 수급을 안정시키는 효과는 크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정부가 대규모 증시안정자금을 조성한 것은 1990년 이후 처음이다. 당시 증권사와 상장사 등 무려 627개사들이 총 4조8500억원의 증시안정기금을 조성해 급락한 증시를 떠받쳤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는 증권업권에 국한한 5000억원 규모의 증안펀드를 조성하는 데 그쳤다. 2018년 10월 말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으로 주가가 급락했을 때도 코스닥 시장에 유관기관들이 만든 5000억원 규모의 증안펀드가 투입됐다. 이번 증안펀드는 1990년 정부가 주가 부양을 위해 5조원 가량 투입했던 증시안정기금과 비슷한 구조다. 특히 1990년 이후 약 30년 만에 KBㆍ신한ㆍ하나ㆍ우리ㆍNH 등 5대 금융지주와 각 업권을 대표하는 민간 금융사가 참여한 점이 특징이다.
투자 대상도 과거와 차이가 있다. 이번에 조성되는 증안펀드는 개별 종목에 대한 직접 투자가 아닌 '코스피200', '코스닥150', 'KRX300' 등 국내 증시 대표 지수를 기초로 한 상장지수펀드(ETF)나 인덱스펀드 등에 투입될 전망이다. 개별종목이 아니라 지수에 투자함으로써 투자자 보호와 증시 안정판 역할을 기대한다는 취지다.
1990년대 증시안정기금은 개별 종목에 투자해 시장파급효과가 큰 종목들을 중심으로 한 지수관리에 주안점을 뒀다. 대형제조업주, 금융주, 국민주 등을 주로 매입대상으로 정하는 등 개별 종목을 매수해 관치논란에 휘말리거나 국제무역기구(WTO)에서 이를 문제 삼는 경우도 발생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위원은 "증시안정자금은 개별종목이 아닌 시장 전체를 사들이는 방식인 지수형으로 추종되는 게 합리적"이라며 "개별종목에만 투자한는 경우 각종 특혜 시비가 불거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증안펀드가 규모 면에서 한계가 있어 보인다는 지적도 있다. 10조7000억원은 코스피시장의 시가총액(1083조원ㆍ전일 장 마감 기준) 대비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으로, 이 자금이 한꺼번에 투입된다고 하더라도 산술적으로 1%의 지수 상승을 이끄는 데 그친다. 다음달 곧바로 국내 증시에 투자될 증안펀드 자금 또한 최대 3조7000억원 정도다. 나머지 7조원은 증시 상황을 지켜본 뒤 추가 투자 여부가 결정된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10조원 규모의 증안펀드만으로는 실제 증시 수급을 안정시키는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라며 "주가 낙폭을 일부 줄여줄 수는 있지만 장의 흐름 자체를 바꿔놓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증안펀드를 증시부양 수단으로 여기는 것보다는 시장 안정에 관심을 갖겠다는 정부의 의지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는 시각도 있다. 황 연구위원은 "정부에 의한 인위적인 주가부양은 지양해야 한다"며 "증안펀드 10조원이면 시장안정화 조치에 적정한 규모"라고 말했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리서치센터장도 "이번 기금이 큰 힘이 되기는 어렵겠지만 정부가 시장 안정화에 대한 의지를 갖고 있다는 의미를 가진다"고 평가했다.
고형광 기자 kohk0101@asiae.co.kr
박지환 기자 pjhy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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