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는 잡혔지만 범죄는 계속된다
텔레그램 박사방 폭파 대비
'대피소', '방주' 백업 채팅방
이용자 1000명가량
음란물 공유 44.8% 불기소
시청·소지자 처벌 솜방망이
트위터·디스코드·위쳇 등
플랫폼 옮겨가며 악성 진화
[아시아경제 송승윤 기자, 이정윤 기자] 동영상에 등장하는 여성이 살려달라고 애원하며 울먹거린다. 다른 영상에는 고등학생 쯤 돼 보이는 여성이 화장실 하수구를 혀로 핥는다. 불특정 다수에게 자신을 성추행해달라고 권하는 영상도 있다. 입에 담기도 어려운 이 같은 불법 영상은 모두 '박사' 조씨가 여성을 대상으로 제작한 것이다. 조씨가 구속되고 사회적 파장이 커진 지금도 여전히 모바일 메신저 텔레그램 내 단체 채팅방에서 공유되고 있다. 채팅방에는 "박사 자료를 더 올려줄 수 없느냐", "수위가 더 높은 영상 좀 올려라"는 글들이 수시로 올라온다.
24일 기자가 텔레그램 단체 채팅방 2곳을 확인해보니, 이곳에선 조씨가 제작한 성 착취 영상 수십개를 아무런 문제 없이 재생하거나 다운로드할 수 있었다. 이 채팅방은 경찰수사가 시작될지 모른다는 소문이 돌자 일반 이용자들이 자료를 '백업'해 놓기 위해 만든 것으로 '대피소', '(노아의)방주'로 불린다. 조씨가 만든 채팅방이 '폭파'돼 더 이상 영상을 볼 수 없는 상황을 막기 위해 만들어졌다. 각각 지난해 11월과 올해 2월을 마지막으로 새 영상이나 채팅이 올라오진 않았지만 1000여명에 달하는 사람이 여전히 이 방에 소속돼 있다.
경찰은 채팅방에서 음란물을 시청만 한 인원에 대해서도 엄정히 대응할 방침이지만, 음란물을 단순히 시청만 한 경우까지 처벌할 규정은 없다. 음란물에 등장하는 사람이 미성년임을 알면서도 이를 소지할 경우에만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실제 판결을 보면 단순 소지의 경우 기소되더라도 실형을 선고받은 사례 역시 찾기 어렵다. 그나마 벌금형 정도가 내려질 뿐이다. 지난해 11월 강창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아동ㆍ청소년이용음란물 소지 혐의로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총 2146명이 검찰 수사를 받았지만 이 중 44.8%가 불기소 처분으로 재판도 받지 않고 풀려났다.
오기정 법무법인 태신 변호사는 "아청법상 음란물 제조 및 배포의 경우 행위만으로도 처벌 가능성이 높지만, 단순 시청자나 소지자의 경우 법을 어떻게 적용할지 애매한 것이 사실"이라면서 "소지가 인정된다고 해도 원래 정해진 형량이 낮기 때문에 쉽게 실형을 선고하는 것이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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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벌 가능성이 낮은 상황에 수시로 무대를 옮기며 수사망을 피하는 범죄의 특성이 더해지면서,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최근 텔레그램에서 트위터ㆍ디스코드ㆍ위챗 등 다른 외국계 메신저로 옮겨가 조씨가 제작한 음란물을 공유ㆍ거래하는 정황도 포착되고 있다. 조씨의 영상을 자유롭게 공유하는 텔레그램 단체방이 살아있다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지만, 이를 제재할 방법도 마땅치 않다. 서울지방경찰청 관계자는 "텔레그램이 외국계 메신저 기업이기 때문에 박사 관련 자료나 단체방을 즉각 차단 조치하는 데 한계가 있다"면서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등 연관 부처와 협조하면서 음란물을 삭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정윤 기자 leejuyo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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