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길의 영화읽기]역병보다 역한 권력의 민낯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 시즌2
탐관오리에 이용당한는 왕권…항상 희생 강요 당하는 백성
서자 출신 왕자의 현실 드러내…코로나19 현 상황서 새겨들어야
※ 이 기사에는 영화 스포일러가 될 만한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좀비는 살아있는 시체다. 서인도제도의 부두교 의식에서 유래했다. 인간의 영혼을 뽑아내 노예로 만드는 주술이다. 갸륵한 존재는 조지 A 로메로(1940~2017) 감독의 영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1968)'에서 공포의 대상으로 변했다. 멍한 눈으로 인간을 무자비하게 공격한다. 물린 사람은 한결같이 좀비가 된다. 이처럼 잔혹한 설정은 이후 제작된 여러 영화들이 차용하면서 장르 규칙이 됐다.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은 모본을 따르면서 살짝 변화를 준다. 변이가 대표적인 예. 임금(윤세웅), 안현대감(허준호), 수망촌민들 등 생사초로 역병에 걸린 이들에게는 전염성이 없다. 이들에게 인간이란 허기를 채워줄 고기에 불과하다. 그러나 생살을 물어뜯는 의미는 제각각 다르다. 모두 '킹덤'이 가리키는 다양한 주제의식과 결부된다.
허수아비 왕의 시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모두 죽거나 내쳐졌다. 넌 내 유일한 아들이며, 가장 소중한 사람이다. 그러니 꼭 살아남거라. 그래서 너는 저들과 다르다는 것을, 나와도 다르다는 것을, 진정한 왕이 무언인지를 반드시 보여주거라.“
왕세자 이창(주지훈)이 기억하는 임금의 당부다. 아버지는 약화한 왕권을 인지했으나 개혁 의지가 없었다. 국란을 피해 명나라로 망명하려 든 조선의 선조를 연상케 한다. 당시에도 종묘와 사직은 바람 앞의 등불 같았다. 고통과 불안은 백성에게 그대로 전가됐다.
이창의 아버지는 죽어서도 탐관오리에게 이용당한다. 생사초로 되살아나 허수아비가 된다. 껍데기만 남아 영의정 조학주(류승룡)가 유도하는 대로 움직인다. 그는 역병을 옮길 능력조차 없다. 동래 지율헌에서 발생하는 2차 감염에 빌미만 제공한다.
임금에게 물려 죽은 단이(김현빈)의 육신을 나눠 먹은 사람들은 괴물(생사역)이 된다. 굶주린 사냥꾼이 아니다. 오로지 역병을 옮기기 위해 공격한다. 이는 자포자기의 감정이 반영된 폭력성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고달프게 살 바에야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절망이 분노로 변했기 때문이다. 계속된 배고픔에 윤리 따위는 사라진 지 오래. 단이의 시체로 국을 끓인 영신(김성규)의 얼굴에서도 죄책감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다 함께 굶어 죽자? 아, 예의니 법도니 따져가면서? 그딴 생각으로 살았다면 동래성 사람들 반은 벌써 굶어 죽었어. 저 아래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남았을 것 같아? 나랏님이 살렸을 것 같아? 아니, 그 사람들 살린 건 배고픔에 굶주리다가 죽은 이웃들의 살과 뼈야.“
반복되는 역사
양심을 저버린 것은 벼슬아치들이 먼저였다. 조선은 왜군의 침략으로 경상 땅을 빼앗길 위기에 처한다. 조학주는 안현대감에게 위험한 제안을 한다. 생사초로 수망촌민들을 인간 병기화하자는 것이다.
"어차피 그들은 어딜 가도 쓸모없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피를 흘려 왜군과 맞서는 것은 이 땅과 백성을 지키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우리 백성들을 우리 손으로 죽이자고요?"
"대감께선 미천한 백성들을 위해 싸우셨소? 난 아닙니다. 내가 지키려고 한 건 이 나라의 근간인 왕실과 종묘사직이에요. 그 일을 위해서 난 무슨 짓이든 할 것입니다."
역사는 반복된다. 3년 뒤 상주목사(정규수)는 동래에서 발생한 역병이 급속도로 확산하자 성밖 피란민들을 외면한다. 이창과 안현대감의 설득에도 성문을 굳게 닫는다. 조학주가 내세웠던 명분을 언급한다.
"성문은 열 수 없습니다. 읍성 안 사람들만이라도 살아야 해요."
"조학주도 문경새재를 걸어 잠그며 똑같이 말했겠지. 우리만이라도 살아야 한다고."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할 뿐이오."
"누가 큰 백성이고 누가 작은 백성인가! 성문을 걸어 잠그면 밖에 있는 자들은 역병에 걸려 죽고, 안에 있는 자들은 갇혀서 결국 굶어 죽을 것이다."
벼슬아치들은 위중한 사태를 바로잡을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백성을 살피기는커녕 탐욕에 눈이 멀어버렸다.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의 발등이라도 문다. 그 조짐은 조운선(漕運船) 물건을 약탈한 화전민들에게서 나타난다. 잘못했다고 싹싹 빌다가 돌연 낫과 곡괭이를 집어 든다.
"공물에 손을 댄 자는 무조건 효시형(죄인의 목을 베어 높은 곳에 매달아 놓아 뭇사람에게 보게 하던 형벌)에 처한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저희는 살 만큼 살아서 죽어도 상관없지만, 저희 아이들까지 죽일 순 없습니다."
난리를 각성의 계기로
안현대감은 조학주의 음모를 막지 못하고 자처해 괴물이 된다. '수(帥)'자 깃발을 나부끼며 조학주에게 달려든다. '帥'는 장수, 우두머리, 통솔자를 뜻한다. 잘못을 뉘우치고 책임질 수 있어야 진정한 리더라는 '킹덤'의 핵심 주제와 맞닿아 있다. 조학주는 안현대감에게 살점이 뜯기지만 괴물로 변모하진 않는다. 신념을 회복한 안현대감과 근본적으로 다르기에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조학주는 결국 지나치게 집착해온 혈육(피)에게 비참한 죽임을 당한다. 왕족의 피에 연연하지 않고 능동적인 리더로 발전하는 이창과 대조된다. 이창은 유혈이 낭자한 혼란을 이겨내며 무자각에서 깨어났다. 정치적 올바름만이 아니다. 7년 뒤 모든 사람은 역병이 사라졌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이창은 괴물이 언제 어디서라도 다시 습격해올 수 있다며 장검을 고쳐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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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측하기 어려운 역병의 발병을 막으려면 평소에 경계를 게을리해선 안 된다는 역설이다. 프랑스 소설가 알베르 카뮈(1913~1960)도 소설 '페스트'에서 비슷한 문제의식을 강조했다. 일상성이라는 도덕적 무자각에 빠져 있지 말고 항상 각성된 의식을 갖고 살아가야 한다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가 새겨들어야 할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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