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산책] 카페 잔 - 인간과 사물, 그리고 공간이 만나는 곳
음료 잔 마음대로 선택 가능…'나만의 잔' 통해 위안
같은 층 여러 개 사무실 벽 허물어 대형 테이블 설치
다양한 패턴 벽지·특이한 전등…을지로 속 힙 카페
[아시아경제 김수완 기자] 을지로3가역 11번 출구에서 도보 1분 거리. 도로 한쪽의 낡은 건물들 사이 제대로 된 간판도 붙어 있지 않은 건물 안에 카페는 위치해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의 여파로 일대를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크게 위축됐지만 지난 3일 오후 휑한 듯 보이는 골목길에는 여전히 하나둘 짝을 지어 찾는 이들이 이어졌다. 바쁘게 살아가는 도시인들을 위로해주는 공간임을 알 수 있다.
건물의 좁고 가파른 계단을 타고 3층까지 오르면 색다른 세상을 만날 수 있다. 특별할 것 없는 입구에 들어서면 계산대 옆 '본인 취향의 잔을 골라주세요'라는 문구가 눈길을 끈다. 이것 하나만으로 2030의 마음을 금세 사로잡았다는 것이 카페를 창업한 루이스 박 대표의 설명이다. 선반에는 와인용 글라스나 화려한 무늬가 그려져 있는 잔까지 평소에 흔히 접할 수 없는 컵들이 가득하다. 때론 에이드 같은 음료를 커피잔에 마시는 손님을 볼 수 있다.
한 층을 여러 개의 사무실로 나누던 벽을 허물어 132㎡(40평)쯤 되는 널찍한 공간을 마련했다. 뚫린 벽 사이에 대형 테이블을 둬 손님들이 제각기 앉아 담소를 나눌 수 있다. 모자로 장식한 갓등과 벽마다 다른 패턴의 벽지가 곳곳을 채우며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테이블, 조명, 벽지, 심지어는 음악까지 제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다"는 박 대표는 "패션 스타일리스트와 포토그래퍼 등 다양한 분야를 경험하다 보니 독특한 인테리어를 구성하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카페 이름도 쉽게 기억할 수 있도록 고안한 결과라고 한다. "한 번 들었을 때 쉽게 기억에 남는 이름을 지으려 했다"는 그는 카페 이름에 걸맞게 국내외 곳곳을 다니며 직접 공수해온 잔으로 손님을 맞는다고 소개했다.
이곳의 대표 메뉴는 드리퍼(커피잔에 커피를 직접 내릴 때 쓰는 깔때기 모양의 기구)를 이용해 커피를 추출하는 베트남 연유라테, 일명 단짠단짠 크림이 올라가는 솔트라테 등이다. 저녁엔 다양한 종류의 와인도 즐길 수 있어 낮과는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다.
빈티지한 감성을 느낀 손님들은 인스타그램용 사진을 찍는 재미에 푹 빠진다. 서로 사진을 찍어주기 바쁘던 커플은 "처음 와봤는데 구석구석 살펴보니 생각보다 더 예쁜 공간인 것 같다"고 말했다. 몇몇은 마스크를 쓴 채 책을 읽기도 하고, 도란도란 얘기꽃을 피웠다. 그중 한 30대 직장인은 "점심을 먹고 늘 들른다. 요샌 사람이 없는 시간도 많아 혼자서 여유 속에 책을 읽는 즐거움이 있다"고 했다. 또 다른 테이블을 차지한 손님은 "코로나19 확산에도 이곳을 찾은 이유는 원하는 예쁜 잔을 감상하면서 사진을 찍고 싶어서"라며 "마스크와 손 소독제를 늘 챙기기 때문에 크게 감염을 걱정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박 대표는 "코로나19로 예전보다 손님이 줄어든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꾸준히 찾아오는 분들을 위해 카페 문을 닫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멋쩍게 웃었다.
손님들은 왜 자신이 고를 수 있는 잔에 마음을 뺏기는 것일까. 생각날 때마다 이곳을 찾는다는 20대 남성 손님의 말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처음에는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따져서 큰 잔만 골랐는데 나중에는 예쁜 잔을 찾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래서 더 재미있는 곳 같다." 자신의 마음을 담을 수 있는 잔을 통해 위안을 얻는다는 얘기로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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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안쪽 한쪽에는 작은 무대가 꾸며져 있다. 이 공간에서는 다양한 분야의 뮤지션 초청 공연을 진행한다. 2018년에는 재즈 기타리스트 최성호와 아르헨티나 전통음악 뮤지션을 초청, 무료 공연을 진행했다. 입소문이 날 수 있는 프로그램을 통해 힙한 카페로서 정체성을 강화해가는 셈이다. 박 대표는 "카페는 저 자신이에요. 제 삶이 고스란히 담긴 곳이죠"라고 소개했다. 또 이렇게도 말했다. "찾아온 손님들이 제가 직접 골라 모은 잔을 통해 순간순간의 행복을 담아갔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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