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정완주 부국장 겸 정치부장] 미래통합당의 선거대책위원장 엽입이 가시화되고 있는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일각에서는 그를 정치 철새라고 비난도 하지만 선거 때마다 그의 무게감은 남달랐다. 정치적 야욕보다는 자신의 철학을 고집했던 탓이다. 과연 그는 탁월한 '선거 청부사'일까. 아니면 '정치적 낭인'일까.
김종인의 정치 이력은 화려하다. 서강대 교수로 재직하던 그는 1980년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 자문위원으로 정치 무대에 등장했다. 민주정의당 전국구 국회의원을 거쳐 노태우 정부에서 보건사회부 장관과 경제수석비서관을 지냈다.
군부독재 시절 주요 보직을 맡은 그가 경제민주화의 대부로 불리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헌법에서 가장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조항을 꼽는다면 제119조 제2항이다. 재벌 규제 등을 포함한 경제민주화의 구체적 근거가 여기에 들어가 있다. 이 조항이 만들어지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주역이 김종인이었다. '김종인=경제민주화'의 아이콘이 된 배경이다.
사실 김종인의 경제민주화는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개헌 당시인 1987년 6월 항쟁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자유 민주주의가 붕괴될 위기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배수의 진'을 친 셈이다.
그의 경제민주화 공약은 두 차례나 정권을 탄생시키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의 승리에 이어 박근혜 후보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일등 공신이다. 박근혜 정권이 들어선 후 경제민주화는 헌신짝 취급을 받고 사실상 폐기됐다. 이에 실망한 김종인은 탈당 사태로 위기를 맞은 민주당 비대위 대표 겸 선대위원장으로 말을 갈아 타 20대 총선을 승리로 이끌어냈다. 전례가 없는 선거 청부사로서 위명을 떨쳤다.
그는 다음 선택지로 안철수를 잠시 거친 뒤 돌고 돌아 다시 미래통합당 선대위원장으로 추대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여야를 넘나드는 그의 행보는 정치적 낭인이라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하다. 매번 선거판을 흔들어 온 책사이면서도 '토사구팽'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의 한계 탓일지도 모른다.
만약 그가 미래통합당에 입당한다면 다가올 토사구팽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미래통합당이 자유한국당 시절에 마련한 경제정책 대안집 '민부론'이 시퍼렇게 살아있기 때문이다. 친기업 성격의 민부론은 김종인의 경제민주화와 상극이다. 미래통합당이 이번 총선 이후 승패를 떠나 과연 민부론을 폐기하고 경제민주화를 기치로 내세울 수 있을까. 장담을 하긴 어렵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는 경제민주화보다 김종인 카드에 매력을 가질 만 하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영입이 무산된 아쉬움을 대체할 수 있고 중도층 확산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차기 대선까지 염두에 둔다면 김종인의 '킹메이커' 역할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팔순의 노회한 정치인이 다시 선거판에 뛰어든다고 해서 과거의 명성이 이어질지도 관심거리다. 이번이 삼세판이다. 신선도가 그만큼 떨어져 식상하다는 의미다. 유통기한을 넘긴 철 지난 상품에 그칠 수 있다.
춘추전국시대에 공자와 같은 현인들은 자신의 이상을 실현시켜줄 군주를 찾아 중원을 떠돌았다. 콘텐츠는 있지만 그것을 구현할 기반과 힘이 없어서다. 현명한 군주를 만난 책사는 자기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낭인으로 전락한다. 책사의 운명이자 한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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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청부사와 정치적 낭인의 기로에 선 김종인. 그는 과연 스스로 운명을 결정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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