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길의 영화읽기]세종의 인사 철학이 대한민국 과학기술의 미래다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
세종은 1444년 정척(鄭陟)에게 사역원(司譯院)의 총책임을 맡기며 “인유일능(人有一能)”이라고 했다. 누구나 한 가지씩은 잘 하는 게 있다는 뜻이다. 그는 완전한 인재는 없다고 생각했다. ‘취할 점’을 잘 찾아 쓰면 누구나 유용한 인재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실제로 세종 집권기에 다양한 분야에서 유능한 인재들이 두각을 나타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장영실이 꼽힌다. 노비에서 면천되었을 뿐만 아니라 종3품 대호군까지 올랐다. 조선의 신분 체계를 뒤흔든 결정에 동의한 대신은 많지 않았을 터.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는 불가피했을 충돌은 면밀히 조명한다.
“뭐가 아니 된다는 게요?”
“노비였던 자를 면천해주신 것만도 과분한데, 벼슬이라니오? 천부당만부당하옵니다, 전하.”
“노비도 조선의 백성이다.”
“백성이 나라의 근간이긴 하나 조선의 신분 체계는 질서를 위한 기준이옵니다.”
“그래서 과인이 그 노비란 신분을 벗긴 것 아니겠소?”“전하, 면천을 해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사람의 천품은 교육으로 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니옵니다.”
“백성의 천품이 교화될 수 없다면 그대들은 정치를 왜 하는 것인가! 단지 백성 위에 군림하면서 권세를 누리기 위해서인가!”
“전하, 이는 조선의 법도를 지키는 일이옵니다. 이미 면천만으로도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오니 벼슬은 다시 고려해 보심이 어떠하십니까?”
“비록 노비의 신분은 하늘이 내린 것이나, 장영실의 능력 또한 하늘이 내린 것이다. 둘 중 하나를 택하라 한다면, 과인은 장영실의 능력을 택할 것이다.”
세종 집권기에만 인재들이 있었을 리는 만무하다. 수많은 ‘장영실’이 존재했겠으나, 대부분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거나 천대만 받다가 사라졌을 것이다. 결국 과학기술은 지도자의 리더십과 사회 시스템 등이 뒷받침되어야만 발전할 수 있다.
우리의 현실은 어떨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관료 출신인 노환진 과학기술연합대학원(UST) 교수는 지난해 7월 국회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정치와 관료가 한국의 과학기술을 망치고 있다”라고 진단했다.
“부처 실ㆍ국장들은 새로 임용된 장ㆍ차관의 의지를 간파한 다음, 그들의 뜻에 배치되는 언행을 하지 않으려는 경향을 보이고, 연구 현장에 와서는 장ㆍ차관의 의지가 그러하니 이해해 달라고 사실상 강요한다. 연구자들도 이미 예상한 일이라고 각오하고 있다. 그들에겐 제대로 된 연구개발보다는 생존이 우선이다.”
바깥에서 프로젝트를 가져와 연구소를 운영하는 현 시스템에서 수십 년간 한 분야에 천착하는 연구자는 나오기 어렵다. 수많은 연구자들은 3~4년 단위로, 불운하면 1~2년 단위로 전공과 무관하게 연구 주제를 바꿔야 한다. 주기는 패션 유행처럼 점점 짧아지기까지 한다.
천문: 하늘에 묻는다에서 세종은 성과보다 사람을 중시한다. 명으로 끌려가는 장영실을 구하기 위해 위험한 계획을 주도한다. 장영실도 세종을 위해서라면 언제든 목숨을 바칠 각오가 서 있다. 일찍이 원대한 꿈을 헤아리고 세종의 손발이 되기를 자처한다.
허진호 감독은 “같은 꿈을 꾸는 지도자와 과학자의 이야기”라며 “개인적 욕심보다 서로 간 신뢰를 우선시하는 내용이 가슴에 뜨겁게 와닿았다”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 사회에 필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세종과 같이 연구자 육성에 힘쓴다면 설사 프로젝트가 실패하더라도 연구자는 남게 된다. 그렇게 각 분야에서 오랫동안 연구해온 전문가들이 많아지면 대한민국 과학기술은 진일보할 수 있다. 여기에는 한 가지 전제가 붙는다. 이들이 긴 호흡으로 마음껏 연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 수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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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호 감독은 그 열쇠로 공감을 제시한다. 세종과 장영실이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동질감을 느끼는 과정에서 정서적 유대감을 뚜렷이 부각한다. 이는 주군과 신하의 관계를 넘어 국민의 공동체 유대감 강화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하다. 과학기술 대중화로 가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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