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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세금제도 개선, 로마를 벤치마킹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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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세금제도 개선, 로마를 벤치마킹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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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피할 수 없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죽음이고 하나는 세금이다."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ㆍ1706~1790)은 이같이 통찰했다. 미국 독립전쟁의 발화점이 됐던 1773년 종주국 영국의 과도한 세금징수에 항의한 '보스턴 차 사건(Boston Tea Party)' 당시의 지도자다운 생각이다. 세금 제도의 합리성을 신생국가 성패의 분기점으로 생각했던 그는 오늘날 미국 100달러 지폐의 주인공이 됐다.


서양 문명의 근간을 형성한 고대 로마제국 번영의 기초체력도 세금 제도의 합리성과 안정성이었다. 기원전 8세기에 성립된 로마는 초기부터 시민의 의무로서 병역과 납세를 제도화했다. 시민권자의 보유재산에 따라 기병, 중보병, 경보병으로 구분해 군대를 편성하고 각자의 비용으로 무기를 구입, 유사시 출전했다. 재산이 없어 무기를 장만할 능력이 없는 데다가 입대하면 가족의 생계도 어려워지는 무산자인 프롤레타리아는 병역에서 제외됐고 2등 시민으로 대접받았다. 시민적 자부심의 출발점이었던 병역과 세금은 로마 확장의 사회적 원동력이었다.

지중해 전역을 제패하고 안정기에 접어든 기원전 1세기의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공명정대한 세제는 '넓고 얕게 세금을 걷는 것'이란 개념을 세우며 단순명료한 세제개혁에 착수했다. 로마 시민에겐 4가지 세금이 부과됐다. 직접세는 노예해방세 5%와 상속세 5%, 간접세는 관세 1.5~5%와 소비세 1%였다. 로마 시민은 일상생활에서 관세와 소비세를 합쳐 2.5~6% 수준의 간접세만 부담하면 됐다. 노예해방세와 상속세는 사유가 있을 때만 납부하는 세금이었고, 그마저도 6촌 이내의 상속세는 면제됐다. 로마 시민이 아닌 속주민은 직접세로 속주세가 수입의 10%로 부과됐지만 병역의무가 없었다.


이후 로마는 무려 200년 이상 동일한 세율을 유지했다. 10분의 1세(decima)는 속주세, 20분의 1세(vicesima)는 관세, 100분의 1세(centesima)는 소비세 등으로 세율 자체가 곧바로 세금 명칭이었다. 로마의 세제는 단순명료하고 안정돼 세무 기관의 비대화를 피할 수 있었고, 납세자로서도 굳이 탈세와 절세에 애쓰기보다 당당하게 내는 편이 이익이었다. 세액 계산도 단순해서 세무사도 필요 없었다.


세제의 근간은 서기 3세기부터 무너지기 시작한다.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납세자가 우선이다. 국가는 세입이 필요한 것에만 손을 댄다"고 봤지만, 로마 후기의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국가가 우선이다. 국가에 필요한 경비가 세금으로 납세자에게 부과된다"로 개념을 바꿨다. 납세자의 능력보다 국가의 필요를 우선시하는 세제개념의 변화는 과중한 세금 부과로 이어지면서 로마 제국의 몰락을 촉진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고대 로마는 물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치사회적 변동의 기저엔 경제산업적 변화가 있게 마련이고 그 핵심은 세금 제도다. 세금 제도의 효율성이란 결국 '돈을 얼마나 걷어서 어떻게 쓰느냐'로 압축된다. 아무리 고상한 가치를 표방하는 국가권력일지라도 납세자에게 무리하게 세금을 걷어 방만하게 사용한다면 체제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현재 우리나라 세제는 효율성은 높지만 합리성은 미흡하다. 납세자 입장에선 IT 발달로 징세 능력은 발전했지만 제도의 합리성에 대해 의문이 많다. 근로소득자의 절반이 소득세를 한 푼도 내지 않는 것은 물론 상속세율도 최고세율 65%로 세계 1위의 약탈적 수준인 데다 이중과세 등 숱한 논란에도 요지부동인 사례가 대표적이다.


세금징수의 효율성은 높아지지만 세금 제도의 합리성이 결여되면 사회적 불안정으로 연결되는 것은 역사적 교훈이다. 세금은 시민적 자부심의 원천이 돼야지 벌금이 돼선 안 된다.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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