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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오늘] 거스 히딩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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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에서 거스 히딩크의 업적은 신성불가침한 가치를 지닌다. 1946년 오늘 네덜란드 헬데를란트주의 파르세벌트에서 태어난 히딩크는 기대를 웃도는 성과, 박수칠 때 떠나는 과감하고도 현명한 처신으로 2002년 월드컵의 기적을 자신의 신화로 만들었다. 당분간, 아니 적어도 내 생애 안에 우리 축구가 월드컵 4강에 다시 들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그해 6월은 특별했다. 세계적 스타가 없는 한국 팀이 4강에 갔다. 히딩크는 메시지를 남겼다. 평범한 사람들도 능률적 조직운영을 통해 1등 집단이 될 수 있다는. 히딩크는 붉은 드라마의 주연이자 연출자였다. 결과는 최선이었지만 초기에는 언론의 사냥감 신세를 면치 못했다. 걸핏하면 0-5로 져서 별명이 '오대영'이었다. 교체해야 한다는 여론도 비등했다.

히딩크는 부임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인터뷰에서 인상적인 지적을 했다. 첫째, 한국 선수들이 기술은 세계 수준이지만 체력이 약하다. 둘째, 대부분 양발을 다 사용한다. 첫째 지적은 놀라웠다. 당시만 해도 '한국 축구는 체력과 투지'라는 통념이 지배했기 때문이다. 우리 선수들이 양발을 다 사용한다는 사실에는 한 번도 주목하지 않았다. 그는 매혹적 축구로 국내외 팬들을 사로잡았다.


히딩크는 2002년 7월3일 세종대학교에서 명예 체육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세종대 김철수 총장은 "리더십에 대한 비전과 일관성 있는 원칙을 통해 한국 축구팀을 세계 수준에 올려놓았다"고 학위 수여 이유를 설명했다. 히딩크는 답사에서 "300여년 전의 한 네덜란드인처럼 나도 1년 반 전에는 난파당한 배와 같았다. 하지만 많은 분의 도움으로 한국에 작은 기여를 해 기쁘다"고 했다.


300여년 전 난파당한 네덜란드인. 우리는 두 명을 떠올릴 수 있다. 얀 야너스 벨테브레이와 헨드릭 하멜이다. 벨테브레이는 우리 역사에 기록된 첫 서양 귀화인, 곧 박연(朴淵)이다. 1653년 하멜이 표류해 도착했을 때 통역을 했다. 하멜은 조선을 탈출해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1668년에 '표류기'를 썼다. 유럽에 '코리아'를 소개한 최초의 단행본이다. 내용은 대체로 부정확하고 부정적이다.

히딩크도 수많은 무용담을 남겼다. 그는 축구를 갖고 들어온 하멜, 축구장 주변을 한국의 전부라고 믿은 21세기의 마르코 폴로였다. 히딩크 팀에서 기술 분석관을 지낸 얀 뢸프스가 월드컵 1주년을 맞아 쓴 '6월 이야기'는 이 생각에 확신을 심어준다. 이 책에는 히딩크가 자신에게 불리한 기사를 쓴 신문사의 여기자를 '혼내주는' 내용이 나온다. 아주 모욕적이다. 신체접촉도 있다.


뢸프스는 신이 난 듯 이 이야기를 적었다. 여기자는 소속사에서 해고되었다고 한다. 히딩크가 여기자를 몰아세울 때 곁에서 지켜본 방송사 기자가 있다. 그는 "그 신문은 좋지 못한 매체"라는 말로 히딩크의 호감을 사려 한다. 그러나 히딩크는 그에게도 가차없이 불만을 쏟아낸다.


나는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이해하지 못한다. 기자들은 어떻게 그러한 수모를 받아들였을까. 어떻게 폭력과 다름없는 행위 앞에 노출된 동료를 방치할 수 있었을까. 여기자는 히딩크 앞에 던져진 먹잇감과 같았다. 그 자리에 있었던 대한민국의 미디어들은 여기자의 눈물을 남의 일처럼 즐겼는가. 정말 그렇다면 썩은 고기라도 챙겨 보려고 몰려든 청소동물과 다를 게 뭔가.


허진석 시인·한국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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