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 가득한 다육식물원… 공원 측에서 관리하지만 무단 낙서는 여전
[아시아경제 문호남 기자] 유명 관광지에 가면 꼭 보는 장면이 있다. 여기저기 적혀있는 한글 낙서들이다. 누군가는 연인의 이름을 새겨놓고, 누군가는 이곳에 여행을 왔다는 발자취를 남기고 싶어한다. 추억을 ‘낙서’로 남기는 셈이다. 관광지뿐만 아니라 국내 식물원에도 이런 낙서들이 즐비한 것이 현실이다.
기자는 지난 23일 서울 광진구 어린이대공원 다육식물원을 찾았다. 그곳에서도 낙서된 식물을 10개 넘게 발견했다. 줄기와 이파리가 낙서투성이였다. 선인장 곳곳에 딱지가 생기고 곪은 자국이 선명했다. 이름을 새겨 사랑을 맹세한 연인부터 의미 없이 휘갈긴 낙서까지 내용도 다양했다.
다육식물원을 찾은 관광객들은 낙서를 보며 한 마디씩 하고 지나갔다. 왜 식물에 낙서를 하냐는 반응이 많았다. 등산복을 입은 한 남성은 낙서를 보며 “이게 뭐야 정말. 사람들 나쁘네 참. 시민의식 낙후됐네”라며 혀를 찼다.
어린이대공원 측에서도 이를 막기 위해 조치를 취하고 있다. 낙서가 있는 선인장을 가까이 보기 위해 울타리 너머로 몸을 기울인 순간 '식물은 눈으로만 보세요'란 안내 방송이 나왔다. 사람의 움직임을 감지하는 카메라가 설치돼 있었다. 하지만 직접 관리하는 인력이 배치되지 않는 이상, 낙서하는 사람들을 막기는 쉽지 않다.
낙서는 식물의 성장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이파리에 유성매직이나 손톱으로 낙서를 할 경우, 식물은 사람처럼 이를 ‘상처’로 인식한다. 만약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상처입은 선인장이나 식물은 잎까지 잘라내야 한다. 하지만 모든 잎을 잘라낼 순 없는 탓에 식물들은 보기 싫은 낙서를 품고 살아가야 한다.
살아있는 식물에 낙서를 하면 안 된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이 당연한 윤리를 배우고 실천해왔다. 조금 더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요하다. 개개인의 사랑이나 추억은 식물이 아닌 다른 곳에 남겨야 하지 않을까. 80년대 유명 노래 중에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라는 노래가 있다. 이 노래를 인용하고 싶다. 사랑은 일기장에 쓰세요.
/사진·글=문호남 기자 munonam@
울타리에 낙서금지 경고문과 사람의 움직임을 감지하는 카메라가 설치돼 있다. 직접 관리하는 인력이 배치되지 않는 이상, 낙서하는 사람들을 막기는 쉽지 않다. /문호남 기자 munonam@
원본보기 아이콘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상처입은 식물은 잎까지 잘라내야 한다. 하지만 모든 잎을 잘라낼 순 없는 탓에 식물들은 보기 싫은 낙서를 품고 살아가야 한다. /문호남 기자 muno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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