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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 뭇매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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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현정 기자] 새삼 지독한 '뭇매' 사회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17세기 문헌에 처음 등장했다는 이 이 단어는 사전적으로 여럿이 한꺼번에 덤비어 때리는 매를 뜻하지만 통상 집단적 비난을 표현할 때 '여론'과 짝을 이뤄 쓰인다. 이름을 정해 적힌 것이 17세기였을 뿐이지 그 역사는 아마도 태곳적으로 거슬러 올라갈 것이다.


뭇매의 대상은 공사(公私)를 가르지 않고, 때때로 누구 하나 곤죽이 돼 일어서기 어려울 정도로 혹독하다. 당장 명확하게 시비를 가리기는 불가능하면서 이념ㆍ철학ㆍ배경에 따라 판단이 다를 경우 몽둥이는 여러개가 된다. 특히 한국사회가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자녀교육이나 부동산, 성(姓) 역할 앞에서는 크고 거칠어진다. 세상이 두 조각, 아니 더 여러 조각 나기도 한다. 비난의 방향은 뒤죽박죽이 되고, 그 모양새도 무분별한 조롱과 혐오로 바뀐다.

하지만 뭇매의 목적은 상대의 숨통을 끊어 놓는 데에 있지 않다. 그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는 현상이나 인물에 대한 여럿의 주목, 판단, 자연스러운 의견 형성 과정을 거치는 일종의 사회 정화 활동이어야 한다. 나와 우리의 이견과 분노를 표출한답시고 몸집으로 들이대는 화난 매질이 돼서는 곤란하다.


요즘은 무언가를 싫어하기로 작정한 사람들이 몽둥이를 들고 도처에서 기다리고 있는 분위기다. 자신들의 성을 지키기 위한 문지기 같기도, 남의 집을 털러 온 도둑 같기도 하다. 많은 사람이 얻어맞기 두려워 일단 몸을 낮추고 숨을 죽여보지만, 그러는 동안 세상이 후퇴하는 느낌이 든다.


폴란드 시인 비스와바 심보르스카의 제목 없는 시 끝 부분을 적어본다. 얼마 전 인터뷰를 했던 한 작가로부터 소개 받은 것이다. '전쟁으로 얻은 우리의 전리품, 그건 세상에 대한 깨달음. 세상은/서로 꼭 맞잡은 두 손에 들어갈 수 있으리 만치 크다는 것./웃으면서 묘사할 수 있을 만큼 복잡하다는 것./ 기도문에 나오는 해묵은 진실의 메아리처럼 특별하다는 것.'



김현정 기자 alpha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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