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은 성난 얼굴로 서초동을 돌아보았다. 흙빛이 된 서초동은 또 성난 손가락으로 광화문을 노려본다. 한민족 분단도 모자라 이젠 서울 강북, 강남으로 판세가 갈린 격돌로 역사의 소용돌이는 휘감아 들고 있다. 성난 급류에서 튕겨 나올 수도, 크르릉 울어대는 물길을 잠재 울 수도 없는 운명의 시간이 다가 오고 있다. 격랑 속에서 더더욱 확연해진 것은 비(非)정치, 비(非)정부, 비(非)국가로 풀어 헤친 망신살이다. 그 엎어진 혼돈 속에서도 한줄기 빛, 오직 민초들만이 상식다움, 양심다움, 나라다움을 지탱하며 서 있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작은 핵심은 개혁이 맞다. 새 정부가 내건 국방개혁, 교육개혁, 언론개혁, 검찰개혁 등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숙제이다. 지금 완전 주목받고 있는 검찰개혁도 꼭 해야 하는 중대 과업임이 분명하다. 개혁이든 혁신이든 병든 조직을 고쳐서 쓰자는데 이의는 없다.
신기한 것은 소주제 개혁으로 인해 대주제, 큰 핵심이 저절로 둥실 떠올랐다는 점이다. 검찰 개혁 공방으로 온 국민이 날을 새고 공부하고 티티카카 축구하듯 토의하고 으르렁거리는 대한민국 워크숍 두 달 만에 큰 핵심이란 대어를 낚았다. 그것은 생명이다. 개혁의 원천이자 도달점이기도 하고 그 어떤 이념과 사상, 설익은 지식과 주의 주장을 웃도는 지고지순한 가치로서 생명을 기리며 갈구하게 되었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한국인과 사회, 나라 저 깊숙이 생명이라는 숨 자체가 꺼지고 있다는 자각에 이르렀다는 얘기다.
그만큼 생기도 활기도 온기도 없이 메말라 쓰러져가는 인간, 사회, 국가에 대한 적나라한 직시와 마주함을 체험하게 되었다는 게 가장 큰 핵심이다. 우선 우리 청년을 포함한 국민 개개인은 자신의 이력과 존재를 증명하고 인정받아야할 권리를 묵살당하고 있다. 한 계단 한 계단 죽어라 노력해서 올라가보니 어떤 무리는 벌써 낙하산타고 사뿐히 안착해 금수저, 은수저나 빨며 중산층 사다리를 걷어차 버린다. 이런 구조에서 낙하하는 한국 사람에겐 따뜻한 온기나 활기 같은 날개는 없다.
신뢰 없음, 무신뢰성(trustlessness)도 이번 개혁 국면에 확인한 큰 핵심인 생명의 문제이다. '나만 믿으면 된다'는 암호 화폐, 비트코인의 치기 어린 듯 보였던 사상이 어느덧 한국 사회 주류로 편입되어 들어와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 맘카페도, 레몬테라스도, 디시 인사이드도, 저기 미국의 미시 USA도 유튜브 채널들도 모두 한국 사람이 건국한 새 것 엠파이어스테이트다. 언뜻 소담한 제 3의 공간 같아 보이지만 본질은 홍콩 임시 정부와 같은 궤를 보여준다.
또한 이번 개혁 국면은 자유와 안전에 대한 염려를 들끓게 만들었다. 자유롭지 못한 생명이 얼마나 핏기가 없고 무기력해지고 마는 것인지를 여실히 알게 되었다. 청문회가 있어도 비리를 확인해도 낙점하지 않을 자유로부터 국민은 철저하게 배제되어 헌신짝 취급을 당하고 말았다. 제왕적 대통령만이 권리를 행사하는 한계와 제약은 분명 자유도 떨구고 국민의 생명력도 감퇴시켜버렸다. 장관 임명도, 안보 조약, 동맹 관계, 경제 정책도 가장 중요한 주권 본체인 국민의 의사와 권리에 반해 독단하는 이런 체제라면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준엄한 결론이다.
모든 것이 가짜 정치, 가짜 국가를 방치한 죗값이다. 작은 핵심 개혁에 몰두하다보니 큰 핵심 생명을 마주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다행히도 진범을 가려낼 수 있게 되었다. 우리 주권 본체 민초들 활기를 빼앗고 생기를 가시게 만든 진범은 과연 대리인들이었다.결국에는 '나 하나만 믿을 수 있다'는 소 생명, 반 생명 현실 도피 풍토를 굳혀 버렸고. 그러니 온통 인터넷 가상 제국 토굴로만 몰려가 두문불출하는 가짜 국가만 날로 번창하게 되었다.
오로지 생명이다. 박경리 <토지>에서 최참판댁 윤씨 부인이 말하였다. "서희야 네가 가진 것은 토지가 아니라 토지 안에 깊숙이 들어 있는 생명이다".
우리 한국인의 생명인 자유와 안전, 신뢰와 지속성을 틀어막고 있는 가짜 정치, 가짜 국가를 걷어내야 한다는 소임을 날마다 건네주는 씁쓸하고도 찬란한 가을의 연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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