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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분열된 국민의 모습을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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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분열된 국민의 모습을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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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 둘로 갈라졌다! 이 소리를 듣는 순간 요즘 서초동과 광화문의 모습이 연상될 것이다. 그러나 누구나 다 하는 이야기를 또 반복하기에는 지면의 가치가 너무 소중하고 아깝다. 둘로 갈라진 사람들의 모습을 보기 위해 지난달 중순 독일 프랑크푸르트 모터쇼(IAA)로 가보자. 역사와 전통 그리고 규모를 자랑하는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분열된 독일 국민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동시에 분열된 모습에서 인류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희망을 볼 수 있었다.


화석연료 기반의 중ㆍ대형 럭셔리 자동차들은 여전히 모터쇼를 지배하고 있었다. 친환경 전기차나 수소차의 약진도 보였지만 이들이 자동차회사의 주수입원으로 역할을 하기엔 당분간은 쉽지 않은 듯했다. 역시 사람들의 관심은 번쩍번쩍하는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에 쏠렸다. 시속 250㎞를 가볍게 밟는 신형 스포츠카 앞은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뤘다.

같은 시각 프랑크푸르트 시내. 모터쇼의 풍경과는 사뭇 달리 자전거 물결이 넘쳐났다. 외곽부터 도심까지 수많은 사람의 자전거 행진 및 시위가 있었다. 거리를 가득 메운 자전거들은 자동차가 더 이상 거리에서 주인 행세를 하지 못하게 하는 정책을 요구하고 있었다. 이른바 교통 정책의 전환(Verkehrswende)이다. 자동차 과소비를 하지 말자는 의미에서 자동차 위에 콘돔을 덮어 씌운 재기발랄한 그림도 등장했다.


자동차 사랑이 유난히 강한 독일의 정서에 균열이 생긴 모습을 보았다. 자동차의 친환경적 요소보다는 성능 자체를 강조하는 분위기가 강한 독일에서, 고속도로 속도 제한 법제화는 요원하다. 한국이나 일본ㆍ중국보다 친환경차 개발 경쟁에서 독일 회사들이 뒤처져 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엄청난 재앙을 가져올 지구 온난화의 주범 중 하나로 자동차의 존재를 부인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자동차를 포기할 정서가 독일 사회 저변에 퍼져 있지 않다. 그런데 이제 자동차를 포기하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자동차 사랑 그리고 추방이라는 갈라진 목소리가 충돌하고 있는 프랑크푸르트의 모습은 여러모로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준다. 모터쇼장 밖에서 울려퍼진 '자동차 아웃'의 구호가 모터쇼 방문객의 마음을 일시적으로 불편하게 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자동차 사랑이 여전한 사람들조차 '자동차와 친환경'이라는 주제에 민감해지기 시작했다. 자동차 포기만이 대안은 아니다. 그래서 친환경 자동차를 선택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기후 재앙의 주범으로 보는 자동차 관련 논쟁이 이번 모터쇼 사례처럼 격렬해지면 질수록 자동차산업은 더욱 친환경적 생태계로 재편될 수 있다.

반면 한국 사회의 모습은 어떠한가? 지난달 말 대통령이 유엔(UN) 기후행동정상회의에 다녀왔지만 법무부 장관 일가의 소식보다도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왜 그럴까? 우리의 모습을 보자. 텀블러 사용 퍼포먼스에는 열심히 참여한다. 그러나 근사하게 포장한 상품이라야 만족하며 구매한다. 그래서 과잉 포장 쓰레기가 집 안에 나뒹군다. 미세먼지에 대한 공포로 공기청정기 구입은 이미 국민 스포츠가 됐다. 하지만 지나가는 사람들에 아랑곳없이 차 안에 앉아 엔진 공회전을 한다. 내 몸이 편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세먼지와 환경오염의 원인이 되기 때문에 엔진 공회전이 대기환경보전법 위반에 따른 과태료 부과 사항인지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다.


한국 사회는 분열되지 않았다. 오히려 온 국민이 일치단결해 지구가 마치 세 개가 있는 것처럼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다. '불편한 문제 제기'를 하는 소수 집단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편함의 덫'에 빠진 압도적 다수는 반환경적 자동차 운행을 한다. 긴 옷을 입고 에어컨을 켤지언정 땀 흘리는 불편한 여름을 거부한다. 반팔ㆍ반바지를 입고 편한 겨울을 보내기 위해 난방을 '빵빵하게' 한다.


환경 관련 정책 발표에 손가락질을 하는 건 쉬운 일이다. 그러나 나의 반환경적 행태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그리고 누군가가 문제 제기를 하면 그저 불편할 뿐이다. 이 모습의 실체와 옳음ㆍ그름을 놓고서 국민 사이에 격렬한 논쟁과 분열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그러면 지속 가능한 한국 사회의 희망이 시작될 수도 있다. 언제쯤일까?


정재훈 서울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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