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칭 씨는 매일 오지로 퇴근한다


사실 오지는 그리 멀지 않다

사람들은 세상 끝 어디쯤이 오지일 거로 생각하지만

자칭 씨는 그 대목에서 바람 빠진 풍선처럼 웃는다

오지는 바로 여기,

불가항력의 고통과 환상

자칭 씨는 사실 매번 길을 잃는다

오지란 그런 곳, 내 지적도에 없는

완전히 빠져나가지도 들어오지도 못하는 땅

언제 사라질지 모를 지붕과 대문의 주소

결심처럼 바짝 밀어 올린 뒤통수

벽과 벽을 밀며 자란 왕성한 야생성

이자와 실직과 월세의 나무줄기를 잡고

곡예를 한다

자칭 씨는 아슬아슬

멍으로 퍼져 간다

오지는 계속 무너지고 노랗게 추락해 바스러지는 얼굴 위, 새로운 도시를 건설한다

재건축이라는 공룡과 건물주라는 신

공룡은 오랜 시간 오지를 주무르다 조금씩 먹어 치운다

남을 것인가 떠날 것인가

잔인하게 자칭 씨의 손에 칼을 쥐여 준다


내일은 계시가 내려오는 만기일

자칭 씨는 생각한다

문명에서의 오지는 도심 한복판에 있다고

오늘부터 자칭에서 타칭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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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를 읽고 나는 좀 부끄러웠다. '오지(奧地)'라는 말 때문이었다. 나는 '오지'라는 말의 뜻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실은 전혀 다르게 소비하고 있었다. '오지'는 '해안이나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대륙 내부의 땅'을 말한다. 그런데 언뜻 생각해보아도 나는 이 말을 느리거나 자연 친화적인 삶, 말하자면 웰빙, 혹은 해외여행, 엑조티시즘(exoticism), 먹방 이런 따위의 말들과 혼동하고 있었다. 창피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심 한복판"의 오지들, 예컨대 반지하, 옥탑방, 고시촌, 쪽방촌, 그리고 여전한 달동네 들을 나는 완전히 타칭으로 여기고 있었던 셈이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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