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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우리 삶의 법칙 ‘양질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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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삼(국립환경과학원 자원순환연구과 연구관)


삶의 균형감이 하나의 중요한 덕목이 된 지금도 여전히 나는 독서 편식중이다. 이런 염두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과학서적들이 내 손에 들려 있곤 한다. 여느 때처럼 과학서적을 흥미롭게 읽다가 저자의 글 한 꼭지가 머릿속에 자리 잡게 되었다. 저자는 과학을 공부하다 접하게 된 ‘세계 철학사’라는 방대한 분량의 책을 읽고 난후 딱 한 구절만이 기억에 남았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양질전화(量質轉化)’라는 개념이다.


헤겔의 철학에서 유래한 ‘양질전화’의 의미는 양적 누적의 과정을 반복하여 그것들이 양적으로 쌓이면 어느 순간에 질적인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이 철학적 개념을 과학적으로 설명한다면 어떤 반응이나 운동이 임계점 또는 특이점이라는 상황에 도달할 만큼의 양이나 힘의 축적이 있어야 만이 새로운 변화가 일어난다고 말할 수 있다.


과학 발달 과정 역시 양질전화의 법칙을 따라서 발전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과학 역사에 큰 이정표를 세웠던 갈릴레이, 뉴턴, 다윈과 같은 과학자들의 새로운 개념들은 그들만의 특별한 통찰력만으로 이루어진 결과물들이 아니다. 그들이 남다른 통찰력을 지녔을 가능성도 크지만 과학사에 남겨지지 못한 많은 과학자들의 무수히 많은 연구 결과(양)들의 보완과 수정 과정들이 쌓여서 양질 전화의 임계점에 닿았다고 할 수 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런 양질전화의 예들은 철학이나 과학과 같은 학문에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적인 삶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고 지금도 경험하고 있는 일이다.


내가 경험한 내 삶속 양질전화의 순간을 생각해 보면 누구보다 걷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매일 걷기만하다 우연히 시도해 본 1km 달리기에서 부터였다고 할 수 있겠다. 나는 걷는 것과 달리는 것이 비슷한 동작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엄청나게 다른데다가 아주 힘든 운동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걷는 사람에서 달리는 사람으로의 한걸음을 내딛은 것이었다.


매일 반복되는 달리기 훈련과 조금씩 거리를 늘려 가는 일들은 매 순간 나에게 육체적 힘듦과 동시에 작은 성취의 기쁨 또한 주었다. 이런 양적인 변화들이 쌓여 어느새 불가능해 보일만큼 멀었던 마라톤 풀코스 거리인 42.195km까지 와 있었던 것이다. 내가 미처 알지 못 했을 뿐, 양질전화는 내 삶의 하나의 법칙으로 실현되고 있었던 것이다.


우주의 역사에 일어나는 큰 변화들이나 개인이 경험하는 작은 변화들 모두 양질전화의 기본 원리를 충실히 따르기에 누구에게나 이 개념은 중요해 보인다. 말콤 그래드 웰의 ‘아웃라이어’에 소개된 ‘1만 시간의 법칙’도 양질전화의 또 다른 표현인 것이다. 뭔가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지금 이 순간에서는 임계점이 보이지 않지만 양질전화의 법칙을 믿으며 각자의 삶에서 새롭게 시작할 한걸음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내 삶에 새로운 양질전화의 순간을 바라면서 과학책으로 채워진 나의 책장 대신 아내가 읽고 있는 책으로 시선을 돌려본다. ‘시대를 훔친 미술’ 내가 한 번도 펼쳐본 적 없는 영역의 책이다. 그러고 보면 여태 나는 그림을 알고 감상하는 것들이 나와는 상관없는 일처럼 여기며 살아왔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명화라고 불리는 유명한 작품들이 우리 주변의 작은 생활 소품에까지 덧입혀져 있다. 뿐만 아니라, 직접 명화를 접하고 감상할 기회도 훨씬 많아졌으니, 내가 모르는 사이 나에겐 미지(未知)의 영역이었던 미술이 내게 참 가까이 와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내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 한걸음이 될지 아직 알 수 없지만 나는 한 손에 그림책을 펼쳐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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