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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은행, 신뢰가 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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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주 자본시장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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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은 남지 않는 장사를 하지 않는다.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낮춰도 은행은 한참이 지나서야 대출금리를 낮추고, 기준금리가 오를 때에는 대출금리를 신속하게 인상한다. 은행에 돈을 맡길 때에는 실망스러운 예금금리를 적용한다. 저금리 기조가 지속하면서 고객들은 0.01%라도 더 많은 이자를 받기 위해 조건 좋은 특판상품에 가입하기 위해 은행 문을 열기도 전에 줄을 서기도 한다. 조금이라도 높은 수익을 내기 위해 주식ㆍ채권을 사거나 펀드에 가입하는 고객도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기대수익률이 높아지는 만큼 리스크도 함께 져야 한다.


말 많은 원금비보장형 금리 연계형 파생결합증권(DLS)도 마찬가지다. DLS는 금리ㆍ신용ㆍ원자재ㆍ환율 등을 활용한 파생결합상품을 말한다. 이 상품은 금리에 연동해 수익을 내는 것으로 원금을 보장하지 않는다. 지난해에만 3조2000억원어치나 발행됐다. 대부분 1억원 이상의 고액 투자자를 상대로 판매하는 사모 형식이었다. 독일 국채 금리, 영국ㆍ미국 이자율스와프(CMS)와 연계된 DLS와 파생결합펀드(DLF)의 판매 잔액은 8224억원에 달한다. 예상손실액은 4558억원으로 절반이 넘는다.

한 은행이 지난 3월부터 판매한 '독일국채 10년물 금리 연계 DLS'의 경우 연 4.2%의 수익률을 제시했다. 6개월이 지난 시점에 무조건 수익을 실현하는 구조여서 만기를 연장할 수 없다. 보통 주가연계증권(ELS)은 3년을 만기로 하되 6개월마다 조기상환 평가를 해서 미달되면 연장할 수 있지만, 이 상품은 6개월 만에 반드시 청산해야 한다. 금리가 0.2% 이상 하락하지만 않으면 6개월 만에 2.0%의 수익을 보장하지만, 반대로 금리가 0.2% 떨어지면 원금을 까먹기 시작하고 0.7%까지 금리가 낮아지면 원금을 모두 잃는 방식이다. 현재 독일국채 10년물 금리는 0.6% 넘게 하락한 상황이어서 다음달 만기를 맞게 되는 이 상품 가입자는 밤잠을 자지 못하고 있다. 일부 은행에서 신탁상품으로 판매한 '코스닥150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를 비롯한 여러 파생상품들도 큰 폭의 손실을 눈앞에 두고 있다.


막대한 손실을 본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그 몫은 고스란히 투자자에게 있다. 은행이 투자상품을 판매하면서 손실을 볼 가능성에 대해 투자자에게 제대로 설명을 했다는 가정에서다. 은행이 그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면 말은 달라진다. 분쟁의 소지가 있다. 고객에게 충분한 사전정보를 전달하지 않고 상품을 판매하는 '불완전판매'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불완전판매는 일종의 사기다. 일부 투자자들은 "원금 손실 가능성에 대해 제대로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상품을 팔면서 은행은 손해 볼 것이 없다. 앞서 사례로 든 DLS 상품의 경우 판매와 동시에 선취수수료로 1%를 떼갔다. 고객이 손해를 보더라도 은행은 챙길 건 이미 다 챙겼다. 수수료 수익이 높은 금융상품을 고객들에게 집중 권유하는 은행들의 정책은 하루 이틀 된 관행이 아니다. 수수료를 더 벌기 위해 상품의 만기를 짧게 설정하는 방식까지 활용한다. "이모작, 삼모작 하라고 하면서 만기 쪼개기를 한다"는 말도 있다.

올해 상반기 국내 은행들은 8조700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냈다. 이자이익만 20조원을 넘어섰고, 비이자이익도 3조6000억원에 달했다. 6대 시중은행 직원의 상반기 평균 급여는 5150만원까지 올랐다. 1년으로 따지면 1억원이 넘는 연봉을 받는 셈이다. 고객이 피해를 보더라도 은행과 은행 직원은 돈을 번다.


은행은 신뢰로 먹고 산다. DLS로 막대한 손실을 본 투자자들은 집단소송을 예고하고 있다. 이들이 그 은행을 다시 찾겠나. 이번 사태로 은행을 갈아타겠다는 고객들이 늘어난다고 한다. 신뢰를 잃고 문을 닫는 은행이 한국에서 나오지 말란 법도 없다. 사태가 일파만파 커져도 해당 은행들은 금융당국 눈치만 본다는 지적이 많다. 불완전판매를 막을 법적 장치를 만드는 건 당연하다. 더 중요한 것은 은행 스스로 신뢰를 생명으로 여기는 기업철학을 갖는 것이다. 은행들이 어떤 조치를 내놓을 지 지켜볼 일이다.




조영주 자본시장부장 yjch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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