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비아에 달나라의 돌이 있다

그 돌 속에 하얀 점이 있어

달이 커지면 점이 커지고

달이 줄어들면 점이 줄어든다


사물에게도 잠자는 말이 있다

하얀 점이 커지고 작아지고 한다

그 말을 건드리는 마술이 어디에

분명히 있을 텐데

사물마다 숨어 있는 달을

꺼낼 수 있을 텐데

당신과 늪가에 있는 샘을 보러 간 날

샘물 속에서 울려 나오는 깊은 울림에

나뭇가지에 매달린 눈(雪)이

어느새 꽃이 되어 떨어져

샘의 물방울에 썩어 간다

그때 내게 사랑이 왔다


마음속에 있는 샘의 돌

그 돌 속 하얀 점이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동안

나는 늪가에서 초승달이 되었다가 보름달이 되었다가

그믐달로 바뀌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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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 詩]달나라의 돌/박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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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시다. 이 시를 읽고는 자꾸 밖으로 나가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지난 나흘 동안 그랬다. 말간 달이 덩그러니 떠 있을 때도 있었고 얼룩덜룩한 구름들만 가득할 때도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이쪽저쪽 눈 닿는 대로 바라보고 바라보고 또 바라봤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딱히 누군가가 떠오르지는 않았다. 다만 저 달을 보고 혹은 저 어둑한 구름을 보고 울기도 참 많이 울었고 그리워하기도 사무치게 그리워했구나 그런 생각만 들었다.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았다. 이젠 어쩌면 아무 희망 없이도 사랑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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