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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국제 정세 변화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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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했던 일이 현실로 일어났다. 일본의 안보상 수출심사 우대국을 의미하는 백색 국가 리스트, 속칭 화이트리스트에서 우리나라가 제외되면서 연일 방송과 신문 등 각종 매체에서 이와 같은 내용의 갖가지 보도가 쏟아지고 있다. 이를 가만히 살펴보면 언론이나 기사의 댓글이나 개인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 갑론을박하는 내용은 크게 두 가지인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제조업에 미칠 영향에 대해 걱정하는 목소리와 이에 대한 해결책을 갈구하는 내용, 우리나라를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한 일본에 대한 비난이나 성찰의 목소리가 그것이다.


국제 정세와 관련된 정치, 외교 분야의 내용에 대해 본 기고에서 논하기보다는 이 경제제재가 국내 제조업에 미칠 영향에 대해 조금 더 분석적으로 들여다보고자 한다. 많은 독자들이 알고있다시피 대부분의 제조업은 글로벌 공급사슬망(Global Supply Chain)을 가진다. 공급사슬망이란 하나의 제품이 완성되기 전까지의 반제품이나 완제품, 재고 등의 물리적 이동과 이와 관련된 정보, 현금의 이동 등을 총칭하는 말이다. 대부분 제조업에서는 다양한 부품이나 원자재를 사용하게 되는데, 이를 고려하면 한 제품을 만들기 위한 공급사슬망은 복잡하고 세계 각국에 걸쳐 있다.

다양한 부품 가운데 일부 부품은 자체 생산하는 경우가 있고, 또 다른 부품들은 아웃소싱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선택적 집중을 위해서 기업이 선택하는 일반적 전략이다. 예를 들어 하나의 완제품을 만드는 데 있어서 A, B, C라는 핵심 부품이 필요하다고 한다면 A는 자체생산하고, B와 C는 아웃소싱하는 식이다. 이때 왜 A, B, C 모두 핵심 부품인데 핵심 부품을 자체생산해야 하지 않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 수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기업은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의 한정된 자원이란 기업의 인적 자원, 네트워크, 물적 자원, 연구개발(R&D) 비용 등을 모두 포함하는 말이다. 즉, 모든 핵심부품을 자체 생산하게 되면 오히려 완성품의 품질이나 성능이 아웃소싱하는 것에 비해 떨어질 수도 있고, 외부조달하는 것에 비해 비용 면에서 효과적이지 못할 수 있다. 그래서 A, B, C의 핵심 부품 모두를 자체 생산하기가 힘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말이 많은 우리나라 반도체 공정을 살펴보자. 사실상 우리나라의 반도체 공정의 대부분은 일본에 굉장히 의존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핵심 소재의 경우 일본 수입 비중이 90%가 넘는 경우가 많다. 더 심각한 것은 자체 생산한다고 하더라도, 이 핵심 소재를 만드는 기기에 대한 수입 의존도도 일본 비중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일본의 경제제재는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한국의 반도체 산업 등 핵심 제조업에 큰 영향을 미칠 것임을 부정할 수 없으며 이는 이미 현실로 다가왔다.


또한 반도체 산업뿐 아니라 많은 피해를 볼 것으로 예상되는 화학 산업의 경우는 이미 성숙된 산업인데, 이 경우 더 큰 피해가 우려된다. 성숙된 산업에서는 제조나 제품에 대한 혁신이 이뤄지지 않는다. 이미 시장 지배적 디자인(dominant design)이 등장했기 때문에 프로세스에 대한 혁신이 주로 이뤄진다. 즉, 단기간에 제조 혁신이나 제품 혁신을 통해 국내 생산이나 국내화를 달성하기는 어렵다는 말이다.

단기전이 어렵다는 말은 결국 우리나라의 반도체, 화학, 디스플레이 등의 산업이 위기라는 것이다. 대책으로 논의되고 있는 소재와 부품 산업을 국내에서 육성하고 국산화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단기로는 어렵다. 이를 위한 인재 육성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이는 굉장한 장기전을 요구한다. 이때 가장 중점을 둬야 할 부분이 공급사슬의 다변화다. 일본의 제재가 너무나 뼈아프게 다가오는 것도 공급사슬의 다변화가 이뤄지지 않아서, 즉 대체재가 없어서이다. 공급사슬의 리스크는 언제 어떤 방식으로 다가올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더더욱 위기가 오지 않았을 때 대비해야 한다. 공급 사슬의 거래처를 늘리고, 항상 대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와 더불어 문제가 생기고 난 뒤 대책을 세울 것이 아니라 이번 일을 계기로 문제가 없는 산업들도 모두 점검해 흔들리지 않는 제조업의 근간을 다시 세울 필요가 있다.


김창희 인천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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