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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counter]카프소설의 문학적 자산과 현재성

최종수정 2019.07.26 10:30 기사입력 2019.07.26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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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은 ‘탈출기:카프문학 작품 선집’

유임하 한국체대 교양교직과정부 교수

유임하 한국체대 교양교직과정부 교수

영화 ‘기생충’을 보았다. 정교한 미장센들의 배치가 돋보였다. 영화는 우리 사회의 계층간 벌어지는 음습한 갈등을 코믹과 위트와 서스펜스를 버무려 명랑하게 다루었다. 가진 자/못 가진 자의 낡은 대립 대신 사기행각에 휘말린다는 코믹한 설정은 못 가진 자들의 괴물과도 같은 욕망의 분출과 함께 두 시간을 넘긴 킬링타임 내내 현존하는 사회 문제들을 연쇄적으로 환기시켰다. 그만큼 영상과 서사는 소설 텍스트보다 정교하고 치밀했다. 영화속 다양한 미장센과 암호 같은 코드는 앞으로 널리 회자되며 퀴즈처럼 많은 해석을 낳을 것이다. 영화 속 다양한 코드를 읽으려면 아무래도 영화관을 한두 번 더 찾아야 할 조바심이 들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인간에 관한 한 가장 내밀하고 상세한 보고서’라는 소설의 정의를 다시 떠올렸다. 천만 관객 영화가 속출하는 한국사회에서 소설 읽기는 그다지 우세한 문화는 아니다. 하지만, ‘기생충’에서 마주한 부와 가난의 대립상은 소설에서는 오래된 낯익은 구도다. 압도하는 화면과 빠른 속도감에 비해 소설 속 텍스트는 느리고 성글다. 소설을 읽는 과정은 문자의 성긴 여백에다 ‘내가 주인공이라면’이라는 가정을 몰입으로 전이시키는 경로이기도 하다.

소설 속 세계는 현실을 소재로 삼고 상상으로 만들어낸 언어의 작은 우주다. 이 세계는 시대조건의 제약과 부딪치며 빚어낸 특별한 관점으로 인간들의 삶을 엿보게 만드는 가공(架空)의 현실이다. 이 세계는 성공한 자의 삶을 관찰하는 게 아니라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서 생겨난 상처와 비극으로 점철된 ‘작은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다. 약자를 괴롭히는 교활함과 온갖 불의로 가득한 세계, 인간의 욕망과 야비한 술책이 빚어내는 괴물과도 같은 현실, 억압적 권력이 거리낌 없이 폭력을 행사하고 그에 상처입고 절망하는 약자를 재현한 이야기에서 우리의 통념은 무너지고 상식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통념마저 해체되고 만다.

무더운 여름밤, 영화 대신 ‘탈출기:카프문학 작품 선집’을 일독했다. 신경향파를 포함해서 카프계열의 작가 열두 명의 작품 스무 편이었다. 작품을 하나하나 읽어가다 보니 잊혀진 일제강점정기의 사회일화가 구체적인 형상으로 펼쳐졌다. ‘문학의 도살장’에서 프랑코 모레티가 지적했듯 창작된 수많은 작품들이 후대의 문학시장에서 살아남을 확률은 극히 희박하다. 지금 읽은 ‘카프소설선집’도 망각을 딛고 시장의 선택으로 운 좋게 살아남은 경우다. 1924년부터 1945년에 걸쳐 선별된 작품들을 일별하면서, 소설 속 디스토피아는 우리를 둘러싼 열강들의 각축, 정치경제적 난맥상, 경직된 사회문화적 현실과 상당부분 겹친다는 점에서 참담한 심정이다. 카프소설이 호명된 것은 이데올로기의 주박에서 벗어나 인간다움의 실현 여부를 다시 성찰하도록, 다양성과 차이를 존중하기를 요구받는 시점에서 참조할 잉여지점이기 때문은 아닐까.

[Encounter]카프소설의 문학적 자산과 현재성

작품 곳곳에서 빈민들은 도움의 손길을 내밀며 절규하고, 지식인과 학생은 고뇌하고 번민한다. 일제 강점기라는 현실은 “창자까지 튀어져 나온 붉은 쥐”를 보며 “쥐새끼와 같이 돌아다니지 아니하고는”(김기진, ‘붉은쥐’) 연명 못하는 세계, 하루하루가 “공포와 비애가 떠도는”(이북명, ‘민보의 생활표’) 일상의 연속으로 나타난다. ‘지옥순례’(박영희), ‘탈출기’와 ‘기아와 살육’, ‘박돌의 죽음’(이상 최서해), ‘원보’와 ‘서화’(이기영), ‘과도기’(한설야), ‘물’(김남천), ‘암모니아탱크’(이북명) 등, 작품에 편재하는 것은 굶주림과 가난과 이주, 도박과 죽음, 감원, 투옥으로 내몰린 극한의 상황들이다. 현실의 질곡에서 생성되는 것은 “우리로서 살아온 것이 아니라 어떤 험악한 제도의 희생자로 살아왔”(최서해, ‘탈출기’)다는 고통스러운 깨달음이다. 그 깨달음은 필연적으로 “노예를 면하려는 싸움”(박영희, ‘싸움’)을 전개해야 한다는 자발적 의지를 불러온다. 당대현실의 충실한 반영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조명희의 ‘낙동강’은 그러한 싸움에서 혁명가의 죽음으로 귀결되는, 비록 현실에서 패배하지만 동시에 식민권력의 무자비한 탄압을 고발하며 결의를 다지는 높은 성취를 거둔 사례다.

비극의 범람과 분출은 가까이에서는 슬픔과 분노를 증폭시키지만 미적 거리와 비판적 관점에서 구조적인 문제라는 인식이 형성되면 현실적으로 대응할 여력을 갖추게 된다. ‘원보’나 ‘암모니아탱크’처럼 죽음으로 내모는 가혹한 노동 현장에 대한 고발이 이를테면 한 예이고, 윤기정의 ‘양회굴뚝’이나 김남천의 ‘공장신문’은 엄혹한 현실과 맞서려면 동지애와 단합된 조합의 힘이 필요하다는 자각과 실천이 다른 한 예가 된다. 지하련의 ‘도정’은 일왕의 항복 선언을 듣던 소년이 ‘쇼와 영감’이 불쌍하다며 눈물짓는 장면을 통해 해방과 찾아온 균열된 의식상태를 예리하게 포착한 흥미로운 수작이다.

카프소설은 ‘식민지현실’이라는 전제로 읽을 때 일제가 남긴 깊고 큰 상처를 드러내 보이며 저항한 사상성의 한 결과, 정신사적 소산으로 읽히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한일관계가 험악해진 지금의 현실에서 카프소설을 읽으니 식민지배의 엄혹함 외에, 식민지배가 합법이라 강변하는 오늘의 일본이 가진 일천한 역사의식과 유아적인 ‘자국중심주의’의 연원을 절감하게 만들고 여전히 개선되어야 할 비인간적인 노동조건에 눈뜨게 만든다.

지난해는 ‘월북문인 해금조치’가 시행된 30년 되는 해였다. 이를 기념하는 학술행사도 풍성했다. ‘해금조치’는 근대문학 성과를 이념의 잣대로 축소, 왜곡시킨 전날의 과오를 일정부분 청산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카프문학에 대한 봉인이 풀리면서 그 성과의 면면은 1960, 70년대 농촌문학과 빈민문학을 거쳐 1980년대 노동문학으로 이어져 왔음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그런 측면에서 소설은 ‘인간에 관한 가장 상세한 보고서’이지만 ‘사회에 관한 가장 상세한 보고서’이기도 하다.


■카프는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동맹’으로서 1925~35년에 활동한 진보적 문학예술운동단체다. 문학도 프롤레타리아 해방에 이바지해야 한다는 이념 아래 조직되었으며 에스페란토어 ‘Korea Artista Proleta Federatio’의 머리글자를 따서 KAPF라고 하였다. 염군사(焰群社)와 파스큘라(PASKYULA) 두 단체의 결합으로 1925년에 조직된 후 다양한 활동을 하였으나 내부 갈등과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자 1935년에 해산하였다.


유임하 한국체대 교양교직과정부 교수





탈출기:카프문학 작품 선집

최서해 , 권환, 김기진, 김남천, 박영희, 백신애, 윤기정, 이기영, 이북명, 조명희. 지하련, 한설야, 지음

새움

1만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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