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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건달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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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철응 기자] 우리나라 최초의 발전소는 어디 있었을까? 요즘은 발전소 입지를 정하려면 주민들의 반발을 비롯해 여러 난관을 넘어야 한다. 대부분 대도시와 떨어져 있다. 처음에는 달랐다. 나라의 중심 수도, 그것도 임금이 사는 궁 안이었다. 당연했겠지만, 한 술 더 떠 지금은 미세먼지의 주범으로 꼽히는 석탄발전소였다.


1887년 경복궁에서 최초의 전기 점등이 이뤄졌다.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한 지 8년만이었다. 고종이 에디슨전기회사에 발주해 향원정 연못가에 석탄화력발전기를 설치했던 것이다. 당시로는 동양 최대였고, 전구 750개를 켤 수 있는 양이었다.

'도깨비불'을 구경하기 위해 모인 인파들은 전구가 밝혀지자 놀라 도망가거나 숨기도 했다고 한다. 새로운 것은 대개 경계심과 불안을 동반한다. 특히 전깃불은 이해할 수 없는 현상들을 가져왔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연못의 수온이 올라가면서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자 당시 사람들은 '나라 망할 징조'라고 했으며, 물고기를 끓인다는 의미의 '증어'(蒸漁)로 불렀다.


연못 물을 냉각수로 쓰므로 '물불', 신기하고 묘하다는 의미의 '묘화'로도 불려졌다. 압권은 '건달불'이다. 전력 공급이 안정적이지 못해 제멋대로 꺼졌다 켜졌다 하는가하면 비용도 많이 들어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2015년 발굴된 경복궁 발전소 터에는 석탄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시작은 그랬다. 이후 이른바 '막장'으로 불리는 곳에서 목숨을 위협받으며 캐 낸 석탄은 이 나라 산업 발전의 기본 동력이 됐다. 광부는 산업 역군이었다.

이제는 다시 천덕꾸러기 신세다. 대기 오염의 주적으로 지목되면서 공생할 수 없는 존재로 여겨진다. 현재 전세계 발전량의 37%인 석탄발전 비중은 2050년 12%까지 떨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시대는 가치를 중심으로 변화하기 마련이다. 어쨌든 길게 봐서 역사는 '더 나은 삶'을 위해 꾸역꾸역 나아가고 있다. 과학의 발전이 밑바탕이다. '건달불'은 환경이라는 삶의 기본 조건에 비춰 역사적 소임을 다했는 지도 모른다. 새로운 시대가 에너지 자원의 간판 선수를 교체시키듯, 상식과 가치관에서도 새로움을 요구받을 수밖에 없다. 변화의 시대에 각자의 좌표를 짚어보는 것이 시대착오로 이어지지 않는 덕목일 것 같다.






박철응 기자 he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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