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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부끄러움은 누구의 몫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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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관련 글을 쓰기 참 만만하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선 그렇다. 본디 교육과 정치는 누구든 한마디 보탤 수 있는 주제이긴 하다. 하지만 요즘 정치인들의 행태를 보면 국민을 웃게 만드는 게 아니라 실소를 자아내는 일이 잦아 글감 찾는 데 어려움이 없을 지경이다. 원래 정치 칼럼이란 읽는 이가 고개를 주억거릴 만한 비판, 대안을 담아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다 해도 무방하다. 꼬집을 거리가 연일 쏟아지는 덕분에 거기까지 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이걸 그저 장삼이사가 이야기하는 상식과 양식만 들이대도 그럴 듯한 글을 쓸 수 있을 정도다.


10년도 더 전에 방영됐던, 자기 팀을 지게 만드는 일종의 프락치를 찾아내는 한 예능프로그램을 기억하는지? 이 숨은 '적군'을 일러 'X맨'이라 했다. 한데 여야를 가릴 것 없이 'X맨'들이 너무 많다. 잊을 만하면, 혹은 공세를 취할 만하면 망언에 눈살을 찌푸리게 할 행동으로 자기네 표를 깎아 먹는 이들은 딱 X맨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자유한국당 소속 예천군 의원이 해외연수랍시고 떠난 길에 여행가이드를 폭행해서 물의를 빚어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른 것이 엊그제 같은데 더불어민주당의 서울 강북구 의원이 17세 위인 동장을 폭행한 소식이 들려왔다.


이들은 기초 자치단체 차원이니 '정당인'이지만 '정치인'은 아니라고 치자. 김진태 의원 등 몇몇 한국당 의원이 주장한 '광주 민주화항쟁에 대한 북한군 개입설'은 어떤가. 만일 북한군이 광주에 침투했다면 자칭 전문가라지만 개인이 알아낸 걸 정부 기관은 몰랐을까. 서슬 퍼렇던 5공화국 시절에 이런 사실을 야당 압살에 얼마나 잘 써먹었겠는가. 이건 논쟁의 여지도 없는 '자살골'이다.


이건 약간의 상식만 있어도 절대 할 수 없는, 요언(妖言), 곧 인심을 혼란하게 만드는 요사스러운 말이다. 그러니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뭇사람의 비판을 받는 게 마땅하다. 그런데 '구세주'가 등장한다. '20대 비하' 발언을 한 더불어민주당의 설훈 최고위원이다. 설 의원은 정부여당에 대한 20대 남성의 지지율이 급락한 것이 보수정권 시절 받은 교육 탓이라고 했다. 이 역시 양식이 있다면 떠올릴 수 없는 망언(妄言), 즉 이치나 사리에 맞지 아니하고 망령되게 하는 말이다.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 후보를 지원한 20대는 언제 교육을 받은 건지, 20대 남성과 여성은 따로 받았다는 건지 비난이 쏟아지자 홍영표 원내대표가 26일 사과 발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항간에는 정부여당 측에서 "우리가 야당 복은 있다"고 '자축'한다는 말이 돈다. 비판과 대안 제시를 통해 야당으로서 수권 능력을 입증하는 게 아니라 잊을 만하면 자충수를 두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정부여당이 좋아만 할 게 아니지 싶다. 설 의원의 발언은, 권투로 치면 그로기 상태에 이른 상대 선수를 돕다 못해 인삼 녹용이라도 먹여주는 것과 비슷하니 말이다. 이런 일이 거듭되니 유권자로선 어느 쪽 손을 들어줘야 할지 혼란스러울 수밖에.


이탈리아 경제사학자 카를로 M 치폴라가 쓴 '인간의 어리석음에 관한 법칙(미지북스)'이라는 흥미로운 책이 있다. 여기 제2기본법칙은 "어떤 개인이 어리석을 확률은 그 개인이 지닌 다른 어떤 특질과도 무관하다"이다. 이걸 보면 X맨들이 이해되기는 한다. 사법고시를 통과했든, 민주화운동에 기여했든 어리석을 수 있단 이야기니 말이다. "어리석은 사람이란 자신은 어떤 이득도 보지 못하거나 심지어 손실을 입으면서 다른 이들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이란 제3기본법칙도 있다. 이를 지켜봐야 하는 국민의 심정은 어떨까.


경제도 어렵다는데 상식도 없고 양식도 모자란 이런 정치인들 수출했으면 좋겠다. 글감이 풍부해져 그쪽 언론인, 칼럼니스트들이 반기지 않을까.


김성희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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