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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장칼럼] 감사위원회의 용도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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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임정수 기자] 자산 2조원 미만인 A기업은 몇 해 전 감사직을 없애고 감사위원회를 설치했다. 자산 규모로만 보면 감사위를 굳이 설치할 필요가 없는 기업이다. 다른 기업이 10% 이상의 지분을 확보해 추천하는 인물을 감사로 선임하라는 주주제안을 보내 왔다.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비상이 걸렸다. 오너 일가가 30% 이상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상법의 '3%룰'에 따라 임기 만료되는 감사 재선임안에 의결권을 충분히 행사할 수 없었다. 표결에 붙였다간 예정된 결과를 기대하기 어려웠다.


김앤장 법률사무소에 고액을 주고 자문을 의뢰했다. 며칠후 자문 결과가 도착했다. 감사직을 없애고 감사위를 설치하는 내용으로 정관을 변경하라는 내용이었다. 상법은 '회사는 정관에 따라 감사에 갈음해 감사위를 설치할 수 있고 감사위를 설치하면 감사를 둘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감사위는 3명의 이사 중 2/3이상(2명 이상)을 사외이사로 구성해야 한다. 사외이사 선임시 모든 주주가 각각 3%까지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어 경여권 방어에 유리하다는 의견이다. 주총 2주 전에 감사위를 정관 변경 사항으로 정해, 주총을 소집하라는 조언도 덧붙였다.

문제는 명분이었다. 주주 제안을 무시하고 경영권 방어만을 목적으로 감사위를 설치하면 주총 결의 취소 사유에 해당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편이 의결의 정당성이 없고 방법에 하자가 있다고 주장하면 송사에 휘말릴수 있다. 논의 끝에 '임시 주총'을 열어 안건을 의결하기로 했다. 정기 주총에서 감사 재선임이 부결되면 '감사 결원 사태가 회사와 주주에 손실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을 명분으로 감사위 설치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결론이었다.


한진칼과 한진 사례가 오버랩된다. 강성부 펀드(KCGI)가 두 회사의 지분을 확보한 뒤 '경영참여'를 선언하자 한진그룹은 감사직을 없애고 감사위를 설치하는 쪽으로 대응했다. 법적으로는 자산 2조원 미만이더라도 감사위를 설치할 수 있지만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자산을 일부러 늘린 것으로 풀이된다. 상법상 자산 2조원 이상인 대기업은 감사위 설치가 의무다. 한진칼은 단기차입금을 늘려, 한진은 자산재평가를 실시해 자산 2조원을 넘겼다. A사 관계자는 "자산 2조원 미만인 기업 중에 감사위를 자발적으로 설치한 기업은 대부분 경영권 방어를 위한 것"이라고 귀뜸했다.


여러 사례를 보니 기업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감사위를 설치한다는 얘기가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는다. 주주 행동주의를 표방하는 외국계 헤지펀드가 난립하는 상황에서 기업들도 경영권 방어 수단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반박할 생각은 없다. 다만 감사위가 본래 도입 취지와는 무관하게, 취지와는 반대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감사보다 감사위가 기업 오너의 지배력을 더 확고히 해 주는 수단이 되는 현실은 분명 비정상적이다. 바로 잡지 않으면 진짜 기업 투명성을 위해 감사위를 만들려는 기업도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다. 감사위 설치를 근거로 주주에게 신뢰를 구하는 일도 어려워질 게 자명하다.



임정수 기자 agremen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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