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onomia]대량해고·비정규직, IMF는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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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용'으로 불리며 승승장구하던 우리나라는 1997년 11월에 국가부도 위기를 맞는다. 나라의 곳간인 외환보유에서 조짐이 나타났다. 1997년 1월에 309억7000만 달러로 감소하더니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에는 위험 수위를 넘어선 204억1000만 달러로 줄었다. 외국자본의 이탈로 환율은 1499.38원까지 올랐다. 실물경제에서도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신호탄은 한보철강의 부도. 당시만 해도 부실기업 하나가 제 풀에 무너졌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하지만 진로, 삼미, 해태, 뉴코아, 한라 등 대기업들이 줄줄이 도산하데 이어 재계 8위였던 기아마저 부도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개발 시대를 풍미했던 과다한 차입과 방만한 경영의 종착역을 보는 듯했다.


외환위기의 원인은 한두 가지로 압축하기 어렵다. 정부의 외환관리와 은행감독기능 부실 못지않게 기업과 은행들의 후진적인 경영 관행 또한 근본적인 요인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정덕구 전 산업자원부 장관은 "역사적으로 볼 때 한국 경제의 본격적인 전환기는 김영삼 정부 출범 이후인 1993년이라고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대통령 경제사'를 쓴 저자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이 책에 "한국 경제의 전환기적 상황은 이미 전두환 정부 말기에서 노태우 정부에 이르는 기간부터 전개되기 시작했다"고 썼다. "그 뒤 개혁과 개방이 가속화되고 내부의 체제를 공고히 하지 못하면서 위기에 직면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그동안 어느 정부를 막론하고 경제발전에 대한 고민과 노력은 늘 있었다. 그리고 성장과 분배의 담론으로 대표되는 경제 딜레마는 건국 초기부터 한국 경제의 최대 이슈였다. 대통령 경제사는 이런 맥락에서 역대 대통령들의 경제 업적을 인물 중심으로 기록했다. 다만 누가 한국 경제사에 어떤 업적을 남겼는지, 그 의미를 판단하는 것은 독자의 몫으로 남겼다. 단편적인 사건이나 정보만으로 '잘한 대통령'과 '잘못한 대통령'을 나누는 식의 당파적이고 이분법적인 접근을 지양한다. 한국 경제가 어느 한순간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라 건국 뒤 수많은 경제정책과 위기극복 과정을 거쳐 이뤄졌음을 강조한다.


저자는 이런 차원에서 "국제통화기금(IMF) 사태가 지금도 끝나지 않았다"고 한다. 김대중 정부는 예정보다 3년이나 빠른 2001년 8월23일에 IMF에서 빌린 195억 달러를 모두 상환했다. 특유 리더십과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을 통해 부실기업과 금융회사를 빠른 속도로 처분하면서 새로운 도약의 틀을 마련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국민들은 대량해고 등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 정부 수립 뒤 가장 체계화된 사회복지제도를 통해 사회안전망이 구축됐으나 복지재정이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큰 폭으로 뛰었다. 저자는 이보다 1998년 1월 출범한 노사정위원회의 판단에 주목한다.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추진된 구조조정 과정에서 비정규직 형태의 근로를 허용했다"면서 "이후 노동시장에는 대기업ㆍ공기업ㆍ은행권의 귀족 노조가 자신들의 고용유지 등 기득권을 모두 지킨 반면, 비정규직은 임금과 사내 복지 등에서 차별받는 양극화가 본격화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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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커지는 차이는 비정규직ㆍ시간제 근로자, 월간 최저임금을 의미하는 '88만원 세대'의 양산으로 이어졌다. 외환위기가 수습된 뒤 국내 기업들은 경영효율을 중시하면서 비정규직을 크게 확대했다. 이는 고용시장 유연화정책과 맞물리면서 정규직의 문을 좁게 만들었다. 그 결과 파트타임이나 일용직ㆍ임시직ㆍ계약직 등으로 일하는 비정규직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외환위기 뒤 정부는 이들에 대해 개별 기업의 고용 문제라는 입장에서 적극적인 입장 표명을 자제해왔다. 그러는 사이 2011년 경제 활동 인구 1700만 명 가운데 비정규직은 577만 명에 달할 정도로 크게 늘었다. 건설직 비정규직을 합하면 859만 명을 훌쩍 넘어간다. 지금도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외환위기가 한국 경제에 남긴 깊은 상처라고 할만하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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