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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 詩]그가 지나갔다/이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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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가 동백나무 그늘의 끝을 막 지나가고 있을 때
그가 지나갔다

참새 몇 마리가 은행나무 이파리 사이에 숨어 뭐라 뭐라 떠들고 있을 때
그가 지나갔다
은회색 승용차가 전속력으로 달려갈 때
그가 지나갔다

노란 원복을 입은 아이들이 줄지어 동네를 돌고 있을 때
그가 지나갔다

왕개미 한 마리가 제 몸만 한 과자 부스러기를 물고 힘겹게
보드블록 가장자리를 가고 있을 때
그가 지나갔다
세상에!
얼굴도 없이

[오후 한 詩]그가 지나갔다/이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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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땐 좀 뜬금없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그런데 다시 읽고 나서는 괜스레 쓸쓸해졌고 재삼 새겨 읽는 동안엔 더없이 막막해졌다. 이 시에서 "그가 지나갔다"라는 문장은 모두 다섯 번 적혀 있다. 그러니 어쩌면 그가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다섯 곳들을 지나갔다는 의미일 수도 있고, 그가 한곳을 지나가는 동안 다섯 가지의 일들이 발생했다는 뜻일 수도 있다. 혹은 그가 지나가는 동안 일어난 일들이 무척이나 일상적이듯 "그가 지나갔다"라는 사건은 그저 매일 반복되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는 맥락일 수도 있다. 그런데, 대체 이 모든 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정작 중요한 사실은 그가 "얼굴도 없이" 지나갔다는 것이니. 문득 생이 궁핍해진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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