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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충훈의 돛단Book]"우리 앞길 막는 그들, 없애겠단 그말 믿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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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 브레머 著 '우리 대 그들'

'군중 분노' 포퓰리스트 정권획득 도구 활용
세계화의 실패가 이 모든 과정의 출발점
국민 vs 정부ㆍ부자 vs 빈자 등 대결 격화
사회계약에 대한 업데이트가 갈등 해결법


"세계주의자들은 미국 노동자 계층의 배를 갈라서 아시아의 중산층을 키웠다. 지금 중요한 것은 미국인들이 더는 그렇게 'X신 취급' 당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인 스티브 배넌이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승리한 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세계화로 인해 경제적 상실감에 빠진 미국인들은 정치 노장 힐러리 클린턴보다 기업가 출신의 트위터 선동가를 지지했다.


미국뿐 아니다. 세계 곳곳 주요 국가에서 정치적 이상 징후가 감지된다. 프랑스에선 창당 1년 만에 대선에 도전한 젊은 중도주의자가 대통령이 됐다. 멕시코에서 근 100년 만에 좌파 대통령이 나왔고, 독일에선 극우 성향의 정당이 2차 대전 이후 최초로 돌풍을 일으켰다. 이들은 하나같이 '우리'의 앞길을 어둡게 하는 '그들'을 이제 멀리 할 때가 됐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전형적 포퓰리스트들이다.


신간 '우리 대 그들'에선 이 같은 정치인들이 득세하는 이유를 찾기 위해 카메라를 180도 돌려 시선을 군중에게로 향한다. 저자 이안 브레머는 군중의 분노와 불안이 포퓰리스트의 정권 획득 도구로 쓰였다고 말한다. 미국 시사 잡지 '타임'의 편집장 출신이자 국제 정치 컨설팅 기업 '유라시아그룹' 회장으로 재직 중인 저자는 세계화의 실패가 이 모든 과정의 시작이었다고 정의한다.


서구 사회의 군중은 아시아의 어느 개발도상국 공장 때문에 자신의 일자리가 사라질까 불안해 한다. 테러 공포에 질린 나머지 이슬람 난민을 추방하라며 극단적 분노를 표출한다. 프랑스 극우정당 연합 대표 마린 르펜의 말은 이들의 심정을 대변한다. 그녀는 "이제 국경은 사라지고 아무나 우리나라에 들어올 수 있다. 그래서 우리의 임금이 깎이고 사회적 보호망이 망가진다. 그것이 우리의 문화적 정체성을 모호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세계화는 사상, 정보, 사람, 돈, 서비스가 국경에 구애 받지 않고 흐르는 것을 추구했다. 최근 수십 년 간 서구 선진국의 주도로 그 속도가 더 빨라졌다. 저자는 세계화가 실은 일부 엘리트층의 이데올로기에 기반을 둔다고 말한다. 즉 엘리트 지배층이 가난한 군중보다는 자신들끼리 네트워크를 연결해 서로 부를 주고받는다는 의미다. 때문에 다수의 국민은 세계화에 입각한 정책이 집행될수록 점점 삶이 각박해졌다.


대표적 예가 유럽연합(EU) 내의 국가들이다. 저자는 "회원국 개개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유럽연합집행위원회 위원들이 법률을 제정하고 집행한 탓에 여러 국가가 부채 위기를 겪었고 임금 삭감, 물가 인상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다. 한때 유럽의 지도자들은 '세계주의'에 입각해 모든 회원국이 이슬람 난민을 할당 인원 수대로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결과 유럽 도처에 바리케이드가 설치됐고 국수주의가 도리어 급성장하는 결과를 맞았다. 결국 영국은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를 통해 유럽연합과의 결별을 선언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저자는 지금 유럽과 미국을 분노로 들끓게 하는 요인들이 그 밖의 수십 개 국가에 충격파를 날릴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지난 세월 동안 필요한 것을 제공 받지 못하고 무시 당한 사람들의 분노를 누그러뜨리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고, 세계주의에서 비롯된 불평등과 이민배척주의가 기술의 발전으로 더욱 심각해지는 사태를 막기에도 너무 늦었다"고 했다. 그는 국민 대 정부의 대립, 부자 대 빈자의 대치, 원주민과 이주민(혹은 소수민족)의 대결이 점점 더 격화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경우를 보자. 1990년대 초 인종차별정책 '아파르트헤이트'가 철폐됐지만 이후 많은 사람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국가는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남아공 15~35세 인구는 약 2000만명인데 일자리가 있는 사람은 620만명에 불과하다. 여전히 흑인청년들의 실업률은 백인의 4배에 달한다. 2000년대 초반 원자재 수출 호황을 누리던 남아공은 세계 경제가 불황에 빠지며 성장률이 빠르게 추락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대 그들'의 구도가 더 공고해졌다. 남아공 젊은이들에게 '우리'를 위협하는 '그들'은 지배층이나 경찰, 백인 외국인 투자자일 수도 있고 젊은 세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기성세대일 수도 있다. 이들은 넬슨 만델라의 후광을 업은 장기 집권 여당 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 부패와 무능을 증오한다. 세계화란 명목으로 자원을 약탈하는 외국인도 배척의 대상이다. 이 나라 젊은이들은 스티브 배넌의 말처럼 'X신 취급'을 받지 않기 위해 '남아공판 트럼프'를 추대할 가능성이 크다.


흥미로운 점은 '그들'과 대립하는 '우리'가 상황에 따라 극단적으로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미국 전체 유권자 중 28%가 2012년에는 오바마, 2016년에는 트럼프를 선택했다. 정치학자 리 드러트먼은 '공화당 지지자 중에서도 가장 열성적인 트럼프 지지 세력은 반이민과 반이슬람 정서가 가장 강하고, 인종에 대한 적개심을 가장 강하게 드러내며, 사회보장연금과 메디케어를 중시하는 경향이 가장 강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저자는 2012년에 이들이 흑인 오바마에게 표를 던진 이유가 자신들의 연금과 건강보험을 보호해 주리라 믿었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추정한다.


저자는 로봇과 인공지능 등 차세대 자동화 기술의 발달이 불평등을 더욱 가속화할 것이며 이로 인해 '우리 대 그들'의 대결이 더 격렬해질 것이라고 봤다. 최근에는 소셜미디어의 발달과 기술적 진보로 인한 '필터 버블(filter burble)'이 '우리 대 그들'의 대결을 부추긴다. '취향 저격' 알고리즘을 통해 편향된 정보만을 습득한 이들은 '그들'을 더욱 더 멀리 하게 된다.


이안 브레머는 이 같은 갈등 구조를 종식하기 위해선 정부와 민간 기업, 기관이 다 함께 사회 계약에 대한 업데이트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새로운 시대에 사람들이 행복을 느끼는 요소가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를 알아내 이를 지원해야 한다는 의미다. 세금 제도의 개편, 교육과 기본 소득의 확대, 긱 경제(gig economyㆍ우버나 에어비앤비 같은 자발적 고용 경제)의 우대 정책 등이 한 예가 될 수 있다. 중요한 건 대립만으론 절대 그 해답을 찾을 수 없다는 점이다.


(이안 브레머 지음/김고명 옮김/더퀘스트/1만7000원)







박충훈 기자 parkjov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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