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정동훈 기자]#. 서울의 한 광고회사에서 근무하는 A씨는 최근 연락처 목록을 정리했다. 직장상사들의 연락처에 알파벳 ‘z’, 한글 초성 ‘ㅎ’를 붙인 것이다. 저장된 연락처 이름은 ‘z 김경운(가명) 부장’, ‘ㅎ 강상호(가명) 실장’ 같은 식이다. A씨는 “이렇게 하면 성이 ‘강’, ‘김’ 등 연락처에 먼저 뜨는 이름이더라도 모바일 메신저의 가장 마지막 목록으로 밀리게 된다”며 “퇴근 후에 친구, 지인들의 카카오톡 업데이트나 연락처를 자주 검색하게 되는데 직장 상사들이 이름이 먼저 뜨면 기분이 썩 좋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나름의 스트레스 관리법이다”라고 말했다.
‘스마트 워크’ 시대, 직장인들의 자화상이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일할 수 있게 됐지만 스마트폰과 디지털 장비로 연결된 직장인들의 ‘오피스 패싱(직장 회피)’ 현상은 다양한 형태로 삶에 녹아들고 있다. 업무 관계자들과의 연결을 어떻게든 회피하려고 하는 현상은 사생활의 영역으로 깊숙이 들어서 있는 모바일 메신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서 두드러진다. ‘z 부장’ ‘ㅎ 실장’은 멀리 있지 않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은 직장 내 스트레스를 퇴근 후 사생활의 영역까지 연장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주당 52시간 근무 실시로 시간이 길어지고 사생활의 영역이 넓어지면서 이같은 현상은 가속화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7월1일부터 300명 이상 사업장부터 먼저 주당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줄이는 근로시간 단축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기업들은 ‘퇴근 후 근무’의 영역이 대폭 늘었다. 직장인 배종호(32) 씨는 “근로시간이 줄어들었다지만 사람을 늘려서 업무를 분담하고 절대 근로시간을 줄인, 조직이 많지 않을 것”이라며 “대부분 퇴근 후까지도 이어지는 업무로 인해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이들이 더욱 늘어났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김지호 경북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직장인들은 평균 5개 이상의 단톡방에 들어가 있다는데 내향적인 사람들에겐 SNS를 통한 피상적인 네트워크는 무척 부담스러울 수 있다”며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공간과 시간에 위안을 얻는 것은 자연스러운 모습”이라고 분석했다.
정동훈 기자 hoon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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