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진의 책 한 끼]고려가 ‘오늘’에 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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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로마사(史)를 '로마인 이야기' 열다섯 권에 담은 시오노 나나미는 역사를 가리켜 "위대한 교훈이자 탁월한 오락"이라고 했다. 나나미는 사료나 고증이 빈약한 틈을 상상으로 메워 거대한 스토리텔링을 했다. 덕분에 흥미로워서 읽히는 역사서의 상징이 됐다.


가뜩이나 척박한 우리 출판시장에서 역사를 역사로 다루는 일은 지식인과 출판사가 뜻 모아 감행하는 도전에 가깝다. 많은 나라의 수백 년을 반세기에 살아낸 우리에게 역사란 무엇인가. 말 할 것도 없이 지금이 역사이고 역사는 지금이다. 요사이 잇따라 출간된 역사서들이 그래서 눈길을 붙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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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는 여전히 우리에게 묻는다 = 한국역사연구회와 출판사 '푸른역사'가 손잡고 내놓은 '고려시대사(전2권)'는 그 중에서도 특별하다. 이들은 2002년 '한국역사연구회 시대사 총서' 편찬에 돌입했다. 전 시대를 망라해 서술하기보다는 시대별로 그 시대를 바라보는 틀을 제시함으로써 그간 쌓인 학계의 연구 성과를 압축해 깊이 있는 역사읽기를 유도하는 게 목표다. '고려시대사'는 그 여덟 번째 결과물이다. 역사학자 여덟 명이 같이 썼다. 고려의 정ㆍ경ㆍ사ㆍ문을 1권(정치와 경제)과 2권(사회와 문화)으로 나눠 고찰했다.


고려시대 동아시아 국제질서와 고려의 국제관계는 추명엽 세종과학고 교사가 돌아봤다. 전근대 동아시아 국제관계를 논할 때 보통은 중국 중심으로 사대관계를 거론하고 조공 책봉 관계를 분석하는데 이런 통념은 다시 생각할 여지가 크다고 그는 주장한다. 고려시대에는 동아시아에 크고 작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나라들이 병존했다. 서북쪽에는 거란족의 요(遼), 서쪽에는 송, 남동쪽에는 일본, 송의 서북쪽에는 서하(西夏), 송의 남쪽에는 월남(越南)이 있었다. 고려도 이들 중 하나였다. "여러 나라의 독자성을 바탕으로 이뤄진 다원적 국제질서"가 형성됐다.


명목상으로 고려는 요의 신하였으나 북방에서 영향력을 두고 다퉜다. 고려는 요와 세 번 크게 싸웠고 최종전에서 이겨 대(對)북방 영향력을 쟁취했다. 고려는 전쟁이 끝나고 요와의 관계를 '화친 관계'로 규정했다. 당시 동아시아를 구성한 나라들은 "모두 독자적인 천하 관념을 가지고 있으면서 서로의 천하 관념을 묵인한 편이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고려나 송은 스스로를 높이고 거란족을 야만스럽게 여기면서도 요의 국왕을 황제로 공인했다. "동아시아는 매우 복합적인 상호 인정의 세계였던 것이다. 달리 말해 당시 동아시아는 동상이몽의 세계였다."


G2(미국ㆍ중국)의 대립을 명ㆍ청 교체기에 빗대 병자호란 같은 비극을 되새기고 '다시 선택을 강요받으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는 이야기가 요사이 미디어에서 각광받는다. 북한이 핵보유국으로 한 걸음 더 나가면 동아시아를 둘러싼 국제관계 고차방정식에 유력한 상수 한 개가 추가되고 셈법은 한층 복잡해질 가능성이 크다. '선택지'를 놓고 분석하는 관점을 고려시대의 다원성과 상호 인정이라는 원리로 환기하는 건 무효할까. 주변국들의 동상이몽은 무엇일까. 고려시대사는 이런 고민을 불러일으키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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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꿰뚫은 '돌직구' = "신의 말이 채택할 만한 것이 못 된다고 여기신다면 다시는 소신을 부르지 마옵소서." 이렇게 적을 때 그의 표정은 어땠을지 궁금하다. 율곡 이이가 1578년 선조에게 올린 사직상소다. 역사학자 김준태 박사가 쓴 '다시는 신을 부르지 마옵소서(눌민)'는 말하자면 조선 선비들이 왕에게 날린 '돌직구' 모음집이다. 선비들이 직언하는 이야기가 새롭지는 않은데 한 데 모아 그것만을 읽으니 시릿하다.


역사의 변곡을 떠올리면서 읽으면 이따금 긴장이 되고 안타깝다. 신선한 기획이다. 이이의 상소 한 구절 더. "전하께서는 자기 자신을 과신하시면서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은 소홀하십니다… 전하께서는 전하의 학문이 이미 완성되어 더는 남의 도움을 받을 것이 없다고 여기십니까?"


명종은 1575년 남명 조식을 단성현(경남 산청군의 옛 지명) 현감으로 제수했다. 조식은 단칼에 거절하며 이렇게 상소했다. "전하의 정치는 이미 잘못되었고, 나라의 근본이 흔들려 하늘의 뜻도 민심도 이미 떠나갔습니다." 당시 조정의 척신들은 조식의 명망을 탐냈다. 그를 등용해 권력의 정당성을 보완하려 했다. 저자는 "인재영입을 통해 정권이나 정당의 지지도를 높이려는 (오늘날의) 행태와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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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조와 북악스카이웨이 = 김신조는 1968년 1월에 내려왔다. 박정희정권은 한 달 뒤에 북악스카이웨이 착공을 했다. 차라리 개발을 해서 북한이 더는 남파작전을 못 펴게 하려는 구상이었다. 서울에서 일산을 관통하는 은평구 택지도 이때부터 개발됐다. 원래 북한이 서부전선에서 밀고 내려올 때를 대비해 설정한 군(軍) 전략지였다. 이런 흐름이 일산~파주 외곽도시, 강변북로 등으로 이어지면서 '수도권 광역화'의 밑거름이 됐다.


1968년 '울진ㆍ삼척 지구 무장공비 침투 사건'은 남산에 터널(남산 1ㆍ2호 터널)을 만들게 했다. 유사시에 30만~40만 명을 수용하는 대피소로 쓰려고 그랬다. '서울 요새화 계획'의 일부였다. '심용환 역사&교육 연구소' 심용환 소장이 쓴 '단박에 한국사(현대편ㆍ위즈덤하우스)'는 이런 식으로 얘기를 풀어 나간다. 2차 대전에서 6월 항쟁까지 조명했다. 이면과 맥락을 들려주고 싶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세계사 수업(진노 마사후미)'이라는 책을 번역 출간한 출판사 '잇북'은 이 책의 카피를 이렇게 뽑았다. '역사를 배우지 말고, 역사에서 배워라.'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한신, 도요토미 히데요시, 오토 폰 비스마르크 같은 이들의 전술ㆍ책략을 분석해 교훈이나 반면교사로 삼도록 안내하는 책이다. 역사서이면서 '성공철학서'를 표방한다.


<고려시대사 1·2 / 김인호·이종서 등 8인 / 푸른역사 / 각각 1만7500원 1만5900원>


<다시는 신을 부르지 마옵소서 / 김준태 / 눌민 / 1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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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박에 한국사(현대편) / 심용환 / 위즈덤하우스 / 1만9800원>


<세계사 수업 / 진노 마사후미 / 잇북 / 1만6000원>


사회부 기자 hjn252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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