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조선시대 사형장이었습니다. '새남터'란 이름으로 알 수 있듯이, 원래는 굿판이 펼쳐지던 강변이지요. '지노귀(鬼)새남'의 터입니다. 한강에 빠져죽은 이들의 넋을 달래고, 좋은 데로 가길 빌던 곳이지요. 그래선지 삶보다는 죽음이 더 가깝게 느껴집니다. 저승의 입구도 그리 멀지 않을 것 같습니다.
1456년, '사육신'의 삶도 여기서 끝났습니다.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에 죽음으로 맞섰던 이들 말입니다. '성삼문'은 이런 시를 남기고 떠났지요. "북소리는 목숨을 재촉하는데/돌아보니 해가 지려 하는구나/황천에는 주막이 없다던데/오늘밤은 뉘 집에서 쉬어갈꼬."(擊鼓催人命 回頭日欲斜 黃泉無一店 今夜宿誰家).
그로부터 사백 년쯤 뒤에는, 더 엄청난 '피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죽어도 두 임금은 못 섬기겠다고 목을 내놓은 자리에, 죽음도 두렵지 않은 이들의 순교(殉敎)가 있었습니다. 천주교 신부들과 신자들이었습니다. 적어도 그들은, 저쪽 세상에서 가야할 길과 쉴 곳에 관해 충분한 정보와 믿음을 갖고 있었지요.
'기해박해(1839)'와 '병인박해(1886)' 등의 광풍이 휩쓸고 지나간 장소에, 성당이 세워졌습니다. '순교성지 새남터 기념성당'. 1호선 전철을 타고, 용산역 근방을 지나다보면 보이는 한옥 양식의 건물입니다. 양화진(楊花津)에는 이곳과 짝을 이루는 성소(聖所)도 있지요. '병인년 그날'을 기리며 지은 '절두산 성당'.
천주교 신자도 아닌 사람이, 주제넘게 무거운 이야기만 앞세웠습니다. 사실 저는, 매우 싱거운 생각 하나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오늘 아침, 달력에서 한껏 도드라져 보이는 숫자 둘이 있었습니다. '22'와 '25', '동지(冬至)'와 '성탄절'. 빛과 어둠을 한 몸에 껴안고 있는 날들이지요. 순간, 이곳이 떠올랐습니다.
동지는 밤의 길이가 제일 길다는 절기. 어둠이 바닥을 치는 날입니다. 이제 조금씩, 해가 길어지겠지요. 서서히 '음(陰)'의 기운이 물러나고, 시나브로 '양(陽)'의 에너지가 잔뜩 움츠러진 만물에 힘을 실어줄 것입니다. 찬바람에 무릎을 꿇은 이들도 희망을 보고, 눈과 얼음의 길만 걸어온 이들도 용기를 얻을 것입니다.
성탄절이야 말할 것도 없지요. 역사가 '기원(紀元) 이전과 이후'로 나뉘게 된 사연의 주인공이 오신 날. 세상 모든 천사는 아기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온다는 것을 가르쳐준 날. 제아무리 큰 광명도, 실낱같은 빛줄기에서 비롯됨을 알게 되는 날. 그리하여 저는, 동지와 크리스마스와 설날이 '같은 날의 다른 이름'들임을 믿습니다.
'새남터'란 이름에서는 신생(新生)의 의미를 읽습니다. '새(롭게) (태어)남'의 터. 전라남도 진도의 '다시라기'와 포개지는 상상입니다. 물론 제 혼자 생각이지요. 상여가 나가기 전 날, 초상집 마당에서 한바탕 웃고 떠들고 즐기는 놀이 말입니다. 질펀한 춤과 노래와 재담이, 상주(喪主)의 눈시울에도 웃음기가 돌게 하지요.
장례 이야기가 나오니, 천주교가 박해를 받던 시절 서양 선교사들 옷차림이 눈앞에 어른댑니다. 1836년에 들어온 최초의 서양인 '모방(Maubant)'신부를 시작으로, 조선의 이방인들은 예외 없이 '상복(喪服)'을 입고 다녔답니다. 훌륭한 잠행(潛行)전략이었지요. 상을 당한 이에게는 말을 붙이지 않던, 습속을 이용한 것이었습니다.
삼베옷에 짚신을 신고 삿갓을 쓴 푸른 눈의 선교사. 사진기록도 남아있고, 새남터 기념관엔 실제 인물처럼 꾸며 놓은 형상도 있습니다. 그들에게 상복은 어쩌면 전투복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엔도 슈사쿠(遠藤周作)'의 소설 '침묵'과 그것을 영화화한 '사일런스'에도 보이듯, 그들의 선교여정은 전쟁의 나날과도 같았습니다.
목숨을 건 싸움의 양상은 조선과 일본이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양쪽 모두 극복해야 할 것이 많은 나라였지요. 조선은 농민들까지 일어나서 불합리한 제도와 인습에 맞서 싸우던 시대였습니다. 말하자면, 선교사들은 구속과 차별과 압박과의 전쟁에 뛰어든 외인병사들이었습니다. 시 한편이 떠오릅니다.
회화 선생 윌리엄은
비가 올 때마다 '피'가 온다고 한다.
그에게 내리는 비는 비지만
우리에게 오는 비는 피였다.
온몸이 온 마을이 피에 젖는다.
- 강창민, '비가 내리는 마을'
비를 맞은 사람들, 피를 맞은 사람들이 함께 떠오릅니다. '학생부군(學生府君)'이라 할 때의 '학생'과 백 년 전의 윌리엄 선생들입니다. '예수성심성당'이나 '예수성심 신학교'에 가면 만날 것 같은 사람들입니다. 국가문화재로 지정된 근대건축물들인데, 원효로 어느 여학교 안에 있지요. 들꽃처럼 아름다운 성당입니다.
저는 지금, 연꽃을 타고 온 '심청'을 만난 기분입니다. '다시라기'(다시+나기=부활)의 섬마을 사람들도 눈앞에 보입니다. 지난겨울, 광화문 촛불의 기억도 새남터 앞 한강물처럼 굼실거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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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제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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