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100만 가구 시대의 그늘…양적 확대에 가려진 구조적 모순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문재인 정부는 '빈곤의 악순환'을 끊기 위한 방안으로 주거복지에 힘을 싣고 있다. 지난달 말 주거복지로드맵을 통해 100만 가구 공급 계획을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양적 공급확대의 화려한 구호에 가려진 현실이다. 임대주택의 현실을 진단해보면 양극화의 그늘이 짙게 배어 있다. 주거복지 정책이 연착륙하려면 '숫자의 유혹'에서 벗어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주택 환경 역시 마찬가지다. 첨단 아파트 설계 경쟁이 한창인 지금 한편에선 컨테이너 주택이나 고시원 등의 비주택이 꾸준히 늘고 있다. 부의 불평등이 고착화되고 있는 주택 시장의 현실과 해결 방안 등을 총체적으로 조망해 본다. <편집자주>


11월29일 주거복지로드맵을 발표하고 있는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11월29일 주거복지로드맵을 발표하고 있는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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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주택 중 최장기 공실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해 봤더니 4580일, 13년 동안 비어 있는 곳도 있었다." 임종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국정감사 때 이러한 내용을 공개했다.

문제의 임대주택은 서울 시내에 있었다는 게 더욱 놀라운 대목이었다. 서울 관악구의 기존 주택을 매입한 뒤 임대주택으로 전환했는데 찾는 사람이 없었다. 방이 지하에 있는 데다 구조적인 결함으로 주거환경이 열악해 최장기 '공가(空家)'의 주인공이 됐다.


21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감자료에 따르면 올해 8월31일 기준 전국 82만3067가구의 임대주택 중 9984가구가 6개월 이상 비어 있어 공가율은 1.20%로 나타났다. 지역별로는 서울의 공가율이 0.23%, 경기도는 0.43%, 부산은 0.68% 수준으로 낮은 편이었다. 반면 경북(3.10%), 충남(2.99%), 전북(2.78%), 전남(2.59%), 대전(2.52%) 등은 상대적으로 비어 있는 임대주택이 더 많았다.

임대주택 유형에 따라서도 공가율은 큰 차이를 보였다. 신축 다세대 주택은 8.82%, 행복주택은 6.75%의 공가율을 기록했다. 반면 국민임대는 0.76%, 영구임대는 1.08% 수준이었다. 50년 공공임대는 공가율이 0.13%로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임대주택 선호 이유는 집 구조와 시설의 노후 정도, 주변 환경, 임대료 등 여러 변수의 영향을 받는다. 행복주택은 신혼부부, 사회초년생, 대학생 등을 대상으로 시세보다 20~40% 저렴하게 공급해 도입 초기 인기를 끌었다.


올해부터 본격적인 입주가 시작됐지만 공가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행복주택의 공가율이 예상보다 높은 이유는 장기 임대주택을 소형 평형 일변도로 공급한 것과 무관치 않다.


새롭게 조성된 임대주택이 낡은 임대주택보다 높은 선호도를 보일 것 같지만 현실은 꼭 그렇지도 않다. 1990년대 초에 건설된 기존의 영구임대주택 공가율은 0.91% 수준인데 2013년 이후 건설된 신규 영구임대주택은 3.99%의 공가율을 보였다.


신규 주택은 깨끗하고 쾌적한 주거환경 등 장점이 있다. 하지만 신도시에 조성된 임대주택의 경우 교통과 교육 등 생활여건 미비로 실수요자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


또 신규 임대주택은 상대적으로 임대료(관리비)가 비싸다는 인식이 강해 낡고 허름한 임대주택을 선호하는 현상도 존재한다. 같은 동네에 두 곳의 임대주택이 있을 경우 낡은 주택은 사람이 몰리고 새 주택은 경쟁률이 미미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주택시장 양극화①]13년간 텅빈 집-30개월 줄선 집‥임대주택의 두 얼굴 원본보기 아이콘


영구임대주택 중 1년이 넘게 공가로 방치된 곳은 800가구에 이른다. 임대주택이 외면받고 있는 것 같지만 영구임대주택 입주를 희망하는 이들은 차고 넘친다. 올해 6월 말 기준 영구임대주택 입주를 기다리며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이들은 2만4574명이다.


평균 대기기간은 15개월에 이른다. 대기기간 역시 지역별로 편차가 크다. 충북은 5개월, 대구와 경남은 6개월에 불과하지만 인천은 30개월, 경기도 15개월, 서울 11개월 등이다. 임대주택 입주 희망자가 넘쳐나는 상황에서 비어 있는 임대주택이 곳곳에 있다는 것은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이 발생했다는 얘기다.


현행 제도상 임대주택 매입 국고지원 금액은 서울이나 지방이나 동일하다. 따라서 수요자의 선호도가 높은 곳에 공공임대주택을 마련할 경우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추가 부담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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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LH가 공공임대주택 공급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도록 법적ㆍ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 의견이다. 또 임대주택별 입주자의 기준이나 임차료 등을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제도적 개선책도 찾을 필요가 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수도권과 지방 등 지역별로 국고지원 금액에 차등을 두는 등 영구임대주택의 정책 실효성을 높일 수 있도록 개선해야 한다"면서 "공급량을 늘리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철저한 입지분석을 통해 미래 수요를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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